2019년 가장 큰 신변의 변화를 꼽자면 시시하게도 퇴사다. 퇴사와 함께 불확실성이라는 망망대해를 표류하게 됐다. 어쩌면 생명줄이었을 지도 모를 몇 번의 이직 제안을 받았지만 모두 반려했다. 그리고 인도행 티켓을 끊었다. 사다나 포레스트(Sadhana Forest)에 가고 싶었다.


사다나 포레스트 🌱

나를 다시 hugger로 만드는 곳 ( 서울에선 이게 왜 안 되는지는 미스테리 ).  내가 가장 아름다운 인연들을 만난 곳. 누군가는 '거긴 너무 히피스러워서 좀...'이라고 말하지만 인생에 히피스러움 한 숟갈 끼얹길 마다 앉는 내가 사랑하는 곳. 세 번 다녀왔지만 네 번째 인연을 꿈꾸게 하는 곳. 


사다나에 대한 그간 경험과 경험에서 파생된 생각들을 정리/기록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1. 비유하자면, 해리포터 덕후가 현실에서 호그와트를 발견한 기분



사다나 포레스트 인디아 - source : Sadhana Forest homepage


사다나 포레스트는 재산림(reforestation) 프로젝트를 하는 생태 공동체다. 이스라엘에서 온 요릿과 아비람 부부와 당시 3세였던 첫째 딸 오셔가 2003년 인도에서 시작해 현재 하이티와 케냐에도 사다나 공동체가 들어섰다.   



사다나 포레스트 파운더 가족 - source : Sadhana Forest homepage



나는 세 곳 중 사다나 포레스트 인디아에 2013년, 2017년, 2019년 총 3번 다녀왔다. 사다나 포레스트 인디아는 남인도에 위치한 대안 공동체 오로빌(Auroville) 서남쪽 코너에 70에이커(acre) 규모로 자리한다.


사다나를 처음 찾은 건 대학생이던 2013년 일이다. 당시 난 답 없는 대학생이었다. 막학기를 앞두고 있었지만 그 흔한 토익 점수, 인턴 경험, 공모전 수상 경력....은 커녕 공모전 참가 이력 하나 없었다. '스펙 쌓기...가 뭐지? 먹는 건가?'라는 마인드였다. 여기에 "여자 혼자 인도에 가면 위험하다"는 주위의 훈수(를 가장한 행동 제약)까지 간단히 무시하고 대학 시절 마지막 방학에 남인도 사다나에 갔다. 


그리고 첫눈에 반했다. 


사다나에 도착한 첫 날 쓴 페이스북 포스팅

사다나에 도착한 첫날 (2013년 1월 29일) 페북에 기록해둔바, 나는 사다나를 찾아서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행복'했다.


2013년 사다나에서

2013년 사다나, tool shed 앞에서


해리포터 덕후가 현실 세계에 호그와트가 진짜로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 한 마디로 와우 모먼트였다.  


그 이유를 설명하고 싶어 초등학생 시절 추억을 잠깐 복기한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에선 매년 식목일 즈음해서 장 지오노 원작 애니메이션 <나무를 심는 사람>을 틀어주곤 했다. 한 남자가 일평생 홀로 말라버린 땅에 나무를 심어 아름다운 땅으로 바꿔놓은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 단번에 매료된 나는 매년 학교에서 같은 애니를 틀어줄 때마다 처음 본 것마냥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나무를 심는 사람> 덕후가 나무 심는 친환경 공동체에 갔으니 호그와트의 존재를 찾아낸 해덕같이 마음이 설렜던 것이다. 











2. 아기나무의 포텐을 얘기하는 사람들


종종 아이들이 얼마나 큰 잠재력을 가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어떤 기업, 기술의 잠재력에 대한 이야기도 무수히 들었다. 하지만 아기나무의 잠재력을 얘기하는 사람들과 만난 건, 사다나에서 처음이었다. 


2013년 사다나 - photo by Jiyong Song

사다나는 정말 '정성스럽게' 나무를 심고 보살핀다. 

이를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예전에 한 기업이 아비람에게 '나무 n그루를 심으면 얼마의 펀딩을 대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사다나의 만성적인 재정난을 단번에 날려버릴 금액이었다. 하지만 아비람은 이 제안을 거절했다. 그는 실질적으로 n그루를 심는 것도, 심고 나서 제대로 보살피기도 어렵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사다나는 나무심기 활동이 '펀딩을 받기 위한 수단'이나 '몇 그루 심었다'라는 성과주의로 전락하는 것을 경계한다. 

설립자의 이런 철학과 전 세계에서 모인 봉사자들의 노력이 더해져 황량했던 사다나의 땅에는 현재 야생동물이 찾는 숲이 들어섰다. 


Sadhana Forest, Then and Now - source : Sadhana Forest homepage



물론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사다나 포레스트 인디아가 있는 타밀나두 지역은 원래 사계절 푸른 Tropical Dry Evergreen Forest(TDEF) 지역이다. 과거엔 호랑이와 코끼리가 서식했을 정도로 숲이 울창했다. 하지만 사다나 프로젝트가 시작됐던 2003년에는 황폐화가 심각하게 진행된 땅(severely eroded, infertile land)으로 전락한 지 오래였고,  얼마 되지 않는 나무들조차 외래종인 경우가 많았다. 

요릿과 아비람은 재산림에 대한 지식도 경험도 전무한 상태에서 사다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처음 몇 년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땅이 너무 척박했다. 봉사자들은 여러 실패를 거치며 아기나무를 살릴 방법을 찾아야 했다.




source : Sadhana Forest Facebook page


사다나는 땅을 파 나무를 심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나무를 심지 않는다. 땅이 너무 메말라 파내기 어려울뿐더러 나무가 뿌리를 내리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한 방법이 땅 표면에 흙 무더기를 쌓아 올리고 이 무더기에 나무를 심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적용한 후로도 한동안 상당수의 나무가 말라 죽었다. 이에 봉사자들은 수분 손실을 최소화할 방법을 찾아냈다. 아기나무 옆에 심지를 낀 패트병을 함께 심어 패트병에 물을 줘 수분이 심지를 타고 뿌리까지 무사히 도달하게 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적용하고 아기 나무 사망률이 급속히 낮아졌다. 

올해 사다나에 다시 가 보니 처음 사다나를 찾았던 2013년과 비교해 확실히 숲이 커진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가 6년 전 보살폈던 아기나무들이 잘 자라 준 것 같아 몸에서 아드레날린 홍수가 났다.

(사다나 포레스트 인디아는 TDEF 복원을 위해 지역 토종 나무를 심는 데 열중하지만, 식량난이 심각한 사다나 포레스트 케냐에서는 열매를 따 먹을 수 있는 나무를 심는다.) 



3. 비거니즘, 벌런티어리즘, 제로 웨이스트, 컴패션


나무심기 그 자체에 매료돼 사다나를 찾았지만, 이내 사다나에서 다른 여러가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그 근간이 되는 사다나의 가치관들은 2013년 한 달 봉사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후로도 오랫동안 나에게 말을 걸었다. 

사다나가 지향하는 주요 가치들(core values)과 이에 대한 고민들을 정리해둔다. 


# 비거니즘 (veganism) 

사다나 포레스트는 동물성 음식과 제품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 비건 공동체다. 아주 진지하게 비건을 실천한다. 한 번은 한 패스트푸드 기업이 아비람에게 사다나에 '''거액'''을 펀딩하겠다고 제안한 적이 있다. 친환경 기업 이미지를 만들려는 마케팅의 일환이었다. 아비람은 이 제안 역시 거절하며 '나는 고기가 든 햄버거를 먹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사실 내가 처음 '비건(vegan)'이라는 개념을 접한 게 사다나에서였다. 

2017년 사다나에서의 한 끼

'비건..? 이츠 인터레스팅 벗 투머치' 

처음 이 개념을 접한 내 반응은 딱 이 정도였다. 공장식 축산이 얼마나 잔인한지 알고 환경을 위해 비건 식단을 지지하지만, 내가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2019년


채식 옵션이 많은 유럽이나 남인도에서는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서울에서 비건을 대체 어떻게 한단 말인가!!!! 가족들이 삼겹살 구워 먹고 있는데 상추만 먹고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회식 자리, 고기 잘 굽는 서글서글한 동기 옆에서 '저는 고기 안 먹는데요'라는 멘트를 대체 어떻게 날린단 말인가!!! 여행지에서 친구가 '여기 오면 꼭 먹어봐야 할 음식이야'라며 스테이크를 추천했을 때 어떻게 거절한단 말인가!!.. 스테이크는 너무 맛있잖아.... 초밥도... 꼬막도.... 무엇보다 치즈도 ! 

정말이지 비건의 ㅂ를 시도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비건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건 한국에 돌아온 후 구제역이 터졌을 때다. 뉴스에서 생매장당하는 가축들의 눈을 보면 우울하고 슬펐다. 그 뉴스를 보며 고기반찬을 먹는 내 모습은 기괴했다. 스스로 꽤나 모순적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이 모순은 나를 '실질적으로' 괴롭게 만들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2015년에 잠깐 비건 식단을 시도했다. 하지만 취업과 동시에 자연스레 그만뒀다. 회식자리에서 고기 잘 구워 예쁨받는 신입사원이고 싶었다. 

나는 환경과 동물권을 위해 비건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해야겠다고 결심하기까지 7년에 걸쳐 지지고 볶는 고민을 했다. 

그 고민들은 크게 '자기검열' 유형과 '자기의심'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 자기검열 : '그저 남보다 도덕적 우위를 점하고 싶은 건 아닐까?' 

아주 오랫동안 나는 아래와 같은 자기검열을 했다. 

1. 동물권과 환경을 위한 채식? 그냥 남보다 도덕적 우위를 점하고 싶은 건 아니고? 힙병에 걸린 거 아냐?

2. 환경이니 생태주의니 하는 것은 엘리트주의적인, 배부른 감수성이 아닐까? 

3. 서울에서 채식하면 돈이 많이 들지 않을까? 만약 비건이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사람들이 주로 누릴 수 있는 생활습관이라면 나는 비건에 심리적 지지를 보낼 수 있을까? 나아가 실천할 수 있을까?

4. 나는 환경 이슈에 선택적으로 민감한 게 아닐까? 

예를 들어, 오리털 파카를 입지 않는건 상대적으로 실천하기 쉬우니까 실천하고, 해외에 가고 싶을 때 비행기 외에 다른 교통수단을 사용할 시간적 여유가 되지 않는다며 비행기를 타면서 '(환경 오염되니) 죄책감이 들지만 어쩔 수 없지'라며 어깨 한 번 으쓱하는 건 자가당착 아닐까? 

지난 5월 사다나에서 위 고민들의 일부를 꺼내놓았다. 사다나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리고 몇 년 동안 고민을 통해 내가 현재 내린 잠정적인 결론은 이렇다. 




(1) 도덕적 우위를 점하고 싶은 마음도, 다른 사람의 도덕성을 판단하거나 평가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나의 일차적인 관심은 나 자신이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으로 옮기지 않아 마음이 괴롭지는 않은지 살피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려 한다. 


나는 왜 육식을 했을 때 괴로움을 느낄까. 내 식탁에 오른 고기가 얼마나 폭력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졌는지 알기 때문이다. 육식을 한다는건 내게 폭력에 가담하는 행위다. 이 행위를 했을 때 나는 '문자 그대로' 메스꺼움을 느낀다. 

(2) 나는 엘리트도 아닌데 '이거 엘리트들이나 하는 배부른 감수성 아냐?'라며 자기검열하는 건 코미디다. 

(3) 비건은 '세련된 라이프 스타일'의 한 종류도 건강을 위한 힙한 다이어트 식단도 아니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실천할 수 있다.

(4) 내 상황에 맞춰 환경 문제에 '선택적'으로 실천적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내 선택의 범위를 점점 늘려가는 노력을 할 수밖에.


- 자기의심 : 나같이 어설프고 게으른 사람이 무슨 수로 비건을...

자기검열의 터널을 지나 맞딱뜨린 건 자기의심 단계다. 

1. 비건은 똑 부러진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나같이 우유부단하고 어설프고(clumsy) 게으른 사람이 어떻게 비건을 하겠어. 난 요리도 안 하잖아. 

2. 전형적인 K-정서 소유자인 내가 서울에서 비건을 할 수 있을까. 까탈스러운 사람이 되는 건 싫다. 민폐를 끼치긴 더더욱 싫다. 다른 사람들과 밥을 먹을 때 나 때문에 일행이 채식 가능 음식점을 찾아 헤매는 건 상상만 해도 스트레스가 쌓인다. 

3. 어찌어찌 비건을 실천하기로 했다 치자. 과연 내가 서울에서 배곯지 않고 다닐 수 있을까? 

4. 어줍잖게 비건을 시도했다가 실패 경험만 하나 더 쌓는건 아닐까? 그러면 스스로 너무 실망할 것이다. 완벽하게 하지 못할 바에 괜히 신세 볶지 말고 살아온대로 사는 게 최선이진 않을까.

이 의심 중 해결된 건 단 하나도 없다. 나는 이 미해결 자기의심들을 짐처럼 끌어안고 지난 6월부터 비건을 지향하고 있다. (완벽히 하기엔 내가 너무 어설픈 인간인지라 '지향'하고 있다.. ㅎㅎ) 


# 벌런티어리즘 (volunteerism) 


2013년 메인헛(main hut) 모인 봉사자들 - photo by Jiyoung Song

2013년 모닝서클을 하는 봉사자들 - photo by Jiyoung Song

'사다나에 가면 전 세계가 당신에게 온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세계 각국 사람들이 사다나를 찾는다. 

벌런티어리즘은 사다나를 떠받치는 주요 가치인 동시에 다소간 논란의 여지가 있는 가치이기도 하다. 사다나 봉사자들은 숙박 및 식사 비용으로 2019년 5월 기준 일일 500루피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사다나에 오래 머물며 프로젝트 매니저 등 역할을 하는 장기 봉사자(long-term volunteer)와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사다나와 함께 하고 싶은 봉사자들에게는 일일 체류비가 면제된다. 

사다나 친구 A에게 전해 들은 것에 따르면, 아비람의 최종 목표는 봉사자들의 체류비를 받지 않고 사다나를 운영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게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개인적으로 일일 500루피는 합리적인 금액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이 금액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내가 지금 카르마 쇼핑(돈 내고 봉사활동 하기)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고민을 꽤 했다. 그런데 나는 사다나에서 한 달간 '살았다'고 생각하지 한 달간 "봉사활동"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 제로 웨이스트 (zero-waste)

사다나에서 처음 알게된 또 다른 개념은 '제로 웨이스트'다. 

2019년 제로 웨이스트 헛

2019년 제로 웨이스트 헛

사다나는 모든 것을 재활용하는 '제로 웨이스트'를 지향, 실천한다. 바케트에 구멍이 나면 구멍을 때워 쓴다. 그래도 물이 세면 화분으로 쓴다. 자루 하나 타이어 하나, 펜 한 자루 허투루 버리는 게 없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창의적 조형물들이 만들어진다. 

어릴 때부터 '세상 사람들이 모두 새것을 사다간 세상이 곧 망해버리겠다'고 생각해 세컨드 핸드 제품을 즐겨 사용하는 편이다. 그런데도 '제로 웨이스트'는 상상도 하지 못 했다. 

여전히 제로 웨이스트를 직접 실천하는 것은 상상도 되지 않기에 작은 것부터 실천해보려 한다. 바로 '새 옷 사지 않기'다. 


# 컴패션 (compassion) 

2013년 사다나 메디테이션 헛에서 - photo by Jiyong Song


가장 마지막에 썼지만 위 모든 가치를 아우르는 가장 중요한 가치다.

Compassion is every human being’s natural and innate sense of care for other living beings. It can grow and we can help it flourish. To be nourished it needs a combination of knowledge and awareness, empathy and sensitivity, and requires action. Every action can be performed in a compassionate way, a way that benefits every living being. (Sadhana Forest homepage)



다소 추상적인 이 개념을 구체화하기 위해 사다나에선 '유니버시티 오브 컴패션(University of Compassion/UCC)'이라는 프로그램이 운영한다. 2013년, 2017년에는 없었는데 올해 사다나에서 처음 접한 프로그램이다. 







아쉽게도 내가 사다나에 있었던 5월엔 진행 중인 UCC 프로그램이 없어 참여할 수 없었다. 프로그램을 들은 친구 A가 해준 설명에 따르면, UCC는 '컴패션을 엔지니어링 하는 프로그램'이다. 

컴패션은 우리 모두 갖고 있는 본능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 컴패션을 찾아보기 힘든 것은 사회가 이 본능이 발휘되기 어렵게 디자인됐기 때문이다 (feat. 극심한 경쟁 사회 등). 사다나는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컴패션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디자인하고 개개인이 각자의 방법으로 컴패션을 실천할 수 있게 모색하는 UCC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다. 

나는 컴패션이라는 개념을 듣고 '일상에서 컴패션을 실천하기엔 내가 너무 망가진 사람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사다나에서 컴패션을 주제로 코어 밸류 토크 (core value talk)를 했을 때도 난 "컴패션? 좋지!.....하지만 컴패션을 갖는 순간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데 어쩌란 말인가"라는 철없는 소리를 했다. 

시간이 더 흘러 성숙한 사람이 돼 컴패션에 대해 다른 고민과 실천을 할 수 있길 기대한다. 또 사다나가 그러하듯, 현실에 쫄지 말고 내 안의 컴패션을 더 자주 꺼내놓을 방법을 고민하고 싶다.  

사다나에는 컴패션, 비거니즘, 벌런티어리즘, 제로 웨이스트 이외에도 gift economy, un-schooling 등 주요 지향점이 있다. 



4. 아름다운 사람들 


사다나가 아름다운 이유의 9할 9푼은 단연 '사람'이다. 기자로 일하면서 정치인, 법조인, CEO 등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지만 사다나 친구들만큼 매력적인 이들을 만나지 못했다. 



2019년 사다나 친구들과

2013년 사다나에서 만나 한국에서도 쭉 연락하는 친구들 

2017년 한국을 찾은 아비람, 오셔와 함께



사다나에서 만난 사람 중 특히 흥미로운 사람들은 장기 봉사자들이다. 롱텀 벌런티어들은 커뮤니티에서 일종의 '매니저' 역할을 맡는다. 아무리 같은 봉사자여도 누군가 매니저 역할을 맡고 다른 누군가는 매니저의 설명과 작업 분배에 따라야 하는 상황이라면 미세한 상하 관계가 생기기 마련이다. 아니, 그럴 것이라는 게 내가 가진 생각이었다. 사다나에 갈 때마다 이 지점을 주의 깊게 관찰했지만 적어도 나는 상하 관계를 발견하지 못했다. '당연히 있을 것 같지만 놀랍게도 찾아볼 수 없는' 또 다른 위계는 언어에 대한 위계다. 전 세계 사람이 모인 사다나에서 사용되는 주요 언어는 예상가능하듯 영어다. 자연히 영어권 벌런티어-비영어권 벌런티어간 위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역시 찾아볼 수 없었다.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라는 궁금증에 롱텀 벌런티어 G에게 "롱텀 벌런티어들끼리 커뮤니티 유지를 위한 교육 같은 걸 받는 거냐"라고 묻기까지 했다. G는 커뮤니티 운영을 위한 회의는 하지만 따로 교육을 받진 않는다고 했다. 

롱텀 벌런티어들을 보며 든 또 다른 생각은 이들이 정서적으로 매우 강인한 사람들이란 것이다. 사다나를 찾는 봉사자들은 보통 한 달 정도 사다나에 머문다. 이를 6개월, 1년, 길면 그 이상 사다나에서 사는 롱텀 벌런티어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한 달에 한 번씩 친구를 떠나보내야 하는 환경이다.

'내가 롱텀 벌런티어를 하면 어떨까?' 

이번에 사다나에서 한 달 머물며 이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사다나에서 산다면 곧 감정적으로 소진돼 버릴 것 같다. 누군가에게 정을 주고 친해지면 이내 떠나가는 사람들을 어떻게 매일 본단 말인가. 

내가 만난 몇몇 롱텀 벌런티어들도 이런 어려움을 겪었는지 새로 온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많은 롱텀 벌런티어들이 내 기준에서 놀라울 정도로 이 상황을 잘 핸들링하고 있었다. 굉장히 흥미로운 지점이다. 

놀라울 정도로 흥미로운 지점이 또 하나 있다. 로컬과의 조화다. 사다나 봉사자들은 자신들이 인도에 온 손님이라는 것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로컬 사람들에게 예의 바른 손님, 살뜰한 이웃이 되기 위해 놀라울 정도로 우아하고 사려깊게 노력한다. 오로빌에 머물며 일부 오로빌리언들이 로컬 사람들과 얼마나 분리, 단절됐는지 느낀 것과 비교하면 신기할 정도로 놀라운 일이다. 한 오로빌리언은 '오로빌은 본래의 가치를 많이 잊어버렸는데 사다나는 잘 간직하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 지역의 숲을 복원하는 일이 외국인들이 자본력과 기술을 끌고 와 몇 년 안에 뚝딱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지역을 잘 아는 로컬 사람들과 함께, 20년-30년 비전을 가지고 헌신해야 가능하다. 사다나가 70에이커 땅에 숲을 되살릴 수 있었던 것은 사다나가 이를 간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다나에서 아름다운 사람들을 너무도 많이 만났다. 내가 이 친구들과 닮아가길. 



5. 모두가 아름다운건 아니야 

내가 사다나에서 만난 99.9% 사람들이 아름다운 이들이지만 예외도 있었다. 내가 겪은 두 인간을 기록해둔다. 


# 2013년 R



2013년 사다나에 머무는 마지막 날 저녁에 일어난 일이다. 한 달 동안 별로 교류가 없던 남자 롱텀 벌런티어 R이 말을 걸었다. 



'내일 너 떠나네. 아쉽다. 내 헛(hut)에 가서 차나 한잔 할래?'



이 말에 아무 의심 없이 R을 따라나섰다. 곧 그가 다른 목적이 있단 것을 알게 됐다. 그날이 내 마지막 날이란 것을 알고 노린 것이다.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자마자 자리를 떴고 아무 일도 없었지만, 그 자체로 아무 일이 아닌 게 아니었으니 아름다웠던 사다나에서의 한 달이 무색하게 끔찍한 끝이었다. 



한국에 돌아오고서도 몇 년 동안 '내가 헛에 따라간 게 잘못한 일이었을까? 내가 너무 나이브했던 탓일까?'라며 자책했다. 유토피아 같다고 생각한 곳에서까지 여성 대상 범죄에 노출될 수 있다는 사실은 비참하리만치 절망적이었다. 이 일은 나를 좀더 늙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사람을 믿지 못하고 방어적인 사람으로.



올해 사다나에서 R의 소식을 들었다. R이 여자 봉사자들에게 성적으로 접근했다는 문제제기가 두 번 나와 몇 년 전 커뮤니티에서 쫓겨났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왜 첫 번째 문제제기가 나왔을 때 쫓겨나지 않은 걸까? 그랬다면 두 번째 피해자가 나오지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가 났다. 


이와 관련해 현재 프로젝트 매니저를 맡고 있는 B와 이야기를 나눴다. B와의 대화에서 사다나가 더는 비슷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길 기대, 소망해볼 수 있게됐다. (물론 제대로 하는지 계속 지켜봐야한다.) 



# 2019년 C 



한국으로 돌아와 생긴 일이다. 

사다나의 남자 롱텀 벌런티어 C가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해왔다. 반가워 메시지를 주고받는데 갈수록 이상했다. C는 "한국 여자가 필요해"라느니 "널 사랑해"라느니 이상하고 더러운 메시지를 계속 보냈다. 



몇 번 참고 넘어갔지만 이상한 메시지가 계속돼 사다나에서 만난 또 다른 친구 D와 상담했다. D는 놀라지 않으며 말했다. 

'이러 일을 겪은 게 너 한 명이 아니야. C는 이전에도 여러 번 다른 여자 봉사자들에게 더러운 메시지로 추근댔고 피해자 리스트를 적자면 끝이 없어.'


이를 듣고 참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 사다나에 이 사실을 알렸다. C는 하찮고 멍청한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하려 했고, 나는 C와 나눴던 메시지 창을 모두 캡처해 사다나에 보여줘야 했다. C는 이내 사다나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다시는 누군가가 나와 같은 일을 겪지 않길 바라며 위 두 일화를 기록해둔다. 

사다나에서 다른 봉사자에게 성희롱을 당한다는 것은 바(bar)에서 같은 일은 겪는 것과 또 다른 일이다. 충격은 배로 크다. 사다나는 봉사자들의 '집'이기 때문이다. 봉사자들은 사다나에서 함께 숨 쉬고 생활한다. 이 집을 안전하게 가꾸는 것은 천 그루 나무를 심는 것보다 중요하다. 








6. 나의 '라이프 체인지 익스피어리언스'





사다나를 세 번이나 찾은 건 '가능한 지구에 영향력 없는(=무해한) 사람으로 살겠다는 내 가치관과 사다나가 지향하는 가치관이 겹치기 때문이다. 또 사다나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내 삶의 가치관을 형성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설프고 게으르지만 2020년, 서울에서 이 가치들을 꾸준히 지향하려 한다. 


덧) 
사다나에서의 마지막 날 B가 말했다. 


너만의 사다나를 찾길 바라


나의 사다나는 무얼까. 이 답을 찾을 수 있을까. B의 이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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