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완독한 첫 책은 앙드레 지드(Andre Cide)의 <반도덕주의자>다. 

앙드레 지드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자 자전적 소설인 <반도덕주의자>. 이 소설은 번역자에 따라 '배덕주의자'로 소개되기도 하는데 해당 책을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이 소설을 읽으려 한다면 동성식이 번역한 <반도덕주의자> 버전을 추천하고 싶다. 동성식은 앙드레 지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앙드레 지드 전문가다. 또 정지돈이 쓴 추천의 말 '플란넬 조끼를 입은 남자'는 구색 맞추기식 추천사가 아니라 여러 번 곱씩어 읽어봄 직한 글이기에 추천한다.


독자를 공범자로 만드는 반도덕주의자, 앙드레 지드 

서점에서 이 책과 처음 마주쳤을 때 <반도덕주의자>라는 제목에 호기심이 들었다.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부도덕'이라는 표현 대신 '반도덕'을 쓴 이유는 무얼까. 더구나 거기에 ~주의까지 붙여 '반도덕주의자'라니. 제목에 끌려 책을 집어 들었는데 지은이가 앙드레 지드였다. 결과는? 뻔했다. 바로 책을 구매해 집에 데려왔다. 

무릇 모든 작가는 자신의 자아를 재료 삼아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을 빚는다. 모든 소설 속 주인공은 부분적으로 소설가의 페르소나다. 하지만 모든 주인공들이 소설가의 내면을 은밀하면서도 노골적으로, 또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건 아니다. 그런 소설은 손꼽힌다. <반도덕주의자>가 바로 그런 소설이다. 

<반도덕주의자>의 주인공 미셸은 (앙드레 지드가 그랬던 것처럼) 아내를 둔 동성애자다. 소설은 미셸이 자신의 배덕을 친구들에게 고백하는 이야기다. 그가 저지른 배덕은 헌신적인 사랑을 준 아내 마르슬린을 배신하고 남자들에게 한눈을 판 것. 그의 배신 속에서 마르슬린은 병마와의 싸움에서 져 생을 마감한다. 

100년 전 프랑스에서 동성애가 그 자체로 배덕이자 범죄로 여겨진 것을 떠올리면, 앙드레 지드에게 소설에서 이야기한 배덕이 '동성애' 그 자체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와 미셸의 배덕은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숨기고 누군가와 결혼해 상대방을 해한 것으로 완성된다. <반도덕주의자>에서의 희생자는 마르슬린이었고 앙드레 지드의 삶에서 희생자는 그의 아내 마들렌이었다. 

미셸에게 이 배덕은 필연이었기에 그는 이 배덕 안에서만 생기를 찾을 수 있었다. 반도덕주의자는 배덕이 생명인 자에게 붙일 수 있는 이름이다. 

자신의 반도덕적 발자취를 털어놓는 미셸 앞에 독자인 내 마음은 어떠했는가. 앙드레 지드가 소설의 머리말에서 " ( 전략 ) 사람들은 내 뜻과는 반대로 분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분개는 미셸로부터 시작되어, 다음번에는 나 자신으로 향했다. 하마터면 그들은 나와 미셸을 혼동할 뻔했다. (후략) " 이라고 말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소설이 발간됐을 당시 몇몇 독자들은 미셸의 배덕에 분개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미셸의 고백에 일말의 분노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어떤 점을 비난해야 할지 몰라서, 우리도 거의 그의 공범자가 되어 버렸다"고 말한 미셸의 친구들과 같이 미셸의 공범자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무엇보다 미셸 내부에 들어앉은 수많은 상반된 정열과 사고를 이해할 수 있었다. 

가령 


내 재산보다 더욱 빨리 마르슬린의 가냘픈 생명이 줄어 가는 것을 괴로움과 기대에 사로잡혀, 유심히 지켜보았다.

라고 말하는 미셸의 마음에 동조할 수 있기에 그를 덮어놓고 파렴치한이라고 욕할 수만은 없었다. 앙드레 지드는 인간 내부에 들어앉은 상반성이 인간 보편의 것이라는 것을 정확히 짚어낸다. 

그는 머리말에서 


이 작품이 말하는 것은, 내 주인공의 영혼 속에서 연출된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의 기이한 모험 속에 가둬 버리기에는 너무나 일반적인 것이다.  

라고 말한다. 즉 요지는 아내를 둔 게이가 아내에게 저지르는 필연적인 배덕이 아니라 인간과 삶 구석구석 자리 잡고 있는 끝없는 딜레마의 일반성이다. 

앙드레 지드가 그랬던 것처럼, 소설 속 미셸이 그랬던 것처럼. 나의 내부 역시 딜레마로 가득 차 있다. 상반된 욕망과 사고는 정확한 동시성을 가지고 내 안에 존재한다. 종종 이 모순을 소화하기 힘들 때 나는 밖으로 하는 그 어떤 표현도 삼간 채 내 안을 들여다보기 바쁘다.  내 안의 자존심, 수치심, 몰인정, 자의식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것만으로 숨이 가쁘다. 고로 이런 나의 내부를 이해하는 데는 아주 오랜 세월이 걸릴 것이다. 

나의 내부를 이해하는 데 앙드레 지드가 유용할 것 같다. 그는 좋은 도반이 되어 줄 것이기에 그가 남긴 책과 그에 관한 책들을 더 찾아 읽어야겠다.

다음 책으로는 <반도덕주의자> 번역자인 동성식이 쓴 <앙드레 지드, 소설 속에 성경을 숨기다>를 염두에 두고 있다. (나는 성경을 다룬 문학작품에 관심이 많다.



덧1) 
앙드레 지드 관련 블로그 포스팅들


덧2) 
동성애를 다룬 혹은 동성애 성향을 지닌 문학가가 쓴 작품을 더 찾아 읽어봐야겠다. 언뜻 떠오르는 작가들만 나열해도 오스카 와일드, 앙드레 지드, 헤르만 헤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