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오스카 와일드, 미칠듯 관음하고 싶은 사람 - 

오스카 와일드에 대한 내 감정을 한 마디로 압축하자 이렇다.

책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이런 생각이 든 건 딱 두 사람 - 까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와 오스카 와일드 - 밖에 없었다. 말인즉슨 소설 속 인물인 뫼르소를 논외로 하면 문학사를 수놓은 수많은 작가 중 오스카 와일드만큼 내 구미를 당긴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 뫼르소에 대해 덧붙이자면, 정확히는 그를 관음하고싶다기보다 뫼르소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뫼르소 같은 사람이 주위에 있다면 나는 그녀, 혹은 그를 사랑해야할지 혐오해야할지 헷갈려 머리 꽤나 아팠을 것 같다. 까뮈의 <이방인>하면 부조리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나는 이방인을 읽고 내내 뫼르소라는 인물을 사랑하기 바빴다. ) 

당대 사교계와 문학계를 (요즘 말로) //뒤짚어 놓으신// 그의 명성, 거침 없이 쾌락을 탐닉한 라이프 스타일, '와씨 쫌 하는데' 라는 생각이 들게하는 그의 어록, 해피엔딩 따위(?)로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 그의 비극적인 말로, 그 비극이 동성애 성향을 죄악시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비롯됐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등이 한데 얽혀 오스카 와일드는 내게 관음하고 싶은 대상이 됐다.

하지만 21세기를 살고 있는 내가 19세기 사람인 그를 관음할 길이 어딨겠나. 그가 남긴 텍스트나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텍스트를 열심히 찾아 읽을 수밖에.

이런 마음에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읽었고, 오스카 와일드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커져 앙드레 지드가 쓴 <오스카 와일드에 대하여>를 읽었다.  (((( 오스카 와일드도 좋은데 앙드레 지드__가 쓴 오스카 와일드라니 !! )))) 






<오스카 와일드에 대하여>는 '1부 | 추모하며' 와 '2부 | 오스카 와일드의 <심연으로부터>에 대하여' 총 2개 부로 구성돼 있다. 정신 없이 2부까지 읽다가 <암퇘지>의 악몽이 떠올라 황급히 덮었다. 2부는 <심연으로부터> 먼저 읽고 읽기 위해 잠시 미뤄두기로 하자.

나는 앙드레 지드가 자신이 경외, 친애했던 오스카 와일드를 추억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생각한다. 앙드레 지드는 직접 1부 초반에 이렇게 말한다.



그(=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을 앞세우는 대신 처음부터 그가 경탄할 만한 인물임을 내세웠어야 했다. 내가 지금 하려는 것이 그것이다. 와일드를 내세움으로써 자연스럽게 그의 작품이 조명받도록 해야 한다. "나는 나의 천재성을 내 인생에 쏟아부었다. 내 작품에는 고작 재주만을 부렸을 뿐이다"라고 와일드는 말했다. 그는 결코 위대한 작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야말로 위대한 삶의 애호가였다고 나는 감히 말한다. 그리스 철학자들이 그랬듯이, 와일드 또한 자신의 지혜를 글보다는 말로 나누고 삶으로 직접 나타냈다. 물 위에 기록하듯 인간의 유한한 기억력에 자신을 내맡긴 셈이다. 그러니 그를 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이들이 그의 이야기를 전해야만 한다. 그의 이야기를 가장 경청했던 친구로서 그와의 개인적인 추억을 이곳에 조금 풀어놓으려 한다.

책을 읽어보면 오스카 와일드와 앙드레 지드는 오랜 시간을 함께한 절친이라기보다 몇 번 만난 지인 정도 관계같다. 그런데도 그 만남들은 지드에게 깊은 인상 (어쩌면 충격)을 남겼고 지드는 와일드가 죽은 후 그의 삶을 기록으로 남긴다. ((( 감탄할 정도로 사려깊고 친절하다 )))

다시 와일드로 돌아가서,, 오스카 와일드!!!!  문학에는 고작 재주만 부리고 천재성을 모두 인생에 쓴 사람. 위대한 삶의 애호가. 와일드의 이런 점은 언제나 나를 매혹한다. 그를 알기 전 나는 삶의 생기를 작품에 쏟아내어 문학을 빚어낸 작가를 사랑했다. 하지만 이 모든 작가들의 삶은 와일드 앞에서 초라하게 느껴진다. 

자신의 천재성을 인생에 쓴 천재의 삶은 어땠을까? 그의 삶은 행복했을까? 그는 삶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 사실 그는 그저 가면놀이에 능한 잔재주꾼은 아니었을까? 그는 지드의 말대로 정말 경탄할 만한 사람이었을까? ((( 일상에서 지독히 경탄할 만한 사건이나 인물을 찾지 못하고 있는지라 나는 경탄할 만한 것에 목말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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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드가 전하길 와일드는 이렇게 말했다.


예술가는 딱 두 부류지. 답을 제시하는 예술가와 질문을 제기하는 예술가. 우리가 어디에 속하는지 알아야만 한다네. 대답을 하는 예술가인지 질문을 하는 예술가인지. 왜냐하면 질문을 하는 예술가는 대답하는 예술가와 전혀 다르거든. 예술작품 중에는 해석에 긴 시간이 필요한 경우가 있지. 이는 아직 아무도 묻지 않은 질문을 앞서 대답했기 때문이네. 대답을 제시했음에도 질문이 제기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라네. 

흠. 와일드는 스스로를 어떤 예술가로 정의했을까? 아마 대답을 제시하는 예술가였을 것이다. 아 물론 그가 내놓은 예술은 자신의 삶 자체였다. fancy 

다시 와일드의 삶에 대한 궁금증이 마음을 휘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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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어 알게된 게 있는데 오스카 와일드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소설을 못 쓴다'는 친구의 놀림에 빡쳐서 단 며칠 만에 썼다는 사실이다. 앙드레 지드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 대해 "와일드의 가장 뛰어난 작품도 그의 화려한 말솜씨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 이라면 누구나 그의 글에 실망할 수밖에 없다"라고 평했다. 와일드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적 없지만 지드의 이런 평가에 십분 공감한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확실히 (그의 명성에 비해) 김빠지는 작품이다. 

1부는 앙드레 지드가 수감 생활을 마친 ( = 나락으로 떨어진 후) 오스카 와일드와 마지막으로 재회한 일화를 소개하며 끝난다. 마지막 만남에서 와일드는 앙드레 지드에게 슬픈 얼굴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원망하지 말게. 무너진 사람에게 그래서는 안 된다네.

그 찬란했던 와일드는 어떤 심연을 겪고 슬픈 얼굴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됐을까. 그가 겪은 심연이 그저 사회적 명성이 추락한 것에 불과하다면 나는 어떤 마음일까. 그나저나 이 말을 할 때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슬픈 얼굴조차도 상황을 극적으로 만드는 장치였을까? 와일드의 말을 들은 앙드레 지드는 또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 부분들에 대해 앙드레 지드가 말을 아껴 한참 생각해봤지만 답을 얻을 수 없었다.

그 답을 '2부 | <심연으로부터>에 대하여'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 원작을 읽지 않았으므로 일단 아껴두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