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퇘지》_마리 다리외세크


어릴 때-그러니까 한창 책을 읽던 시절-나는 현실세계에 관심이 없었고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책의 저자나 시대배경 그 책이 수상한 상의 내역 따위는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저자는 책의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는 스토리텔러일뿐이었다. 나는 책이라는 매개로 저자와 매우 동등하게 조우했고 오직 책을 통해서만 조우했다. 이런 독서법은 오롯이 책의 내용에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이고 '나만의' 감상을 갖을 수 있는 방법이다. 《암퇘지》를 읽으며 나는 줄곧 내가 과거에 가졌던 '내재적 관점의' 독서법이 그리웠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책에 대한 너무 많은 이야기를 주워들었고 책을 읽는 내내 그 수많은 사전정보가 나에게 장애물로 작용했던 것이다. (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낯선 당신이 《암퇘지》를 읽을 계획에 있다면 당장 이 창을 끄고 그대로 책을 펴길 바란다.)

나는 책을 읽기 전에 이미 마리 다리외세크가 <르 몽드>에서 선정한 주목받을만한 작가라는 점, 《암퇘지》가 그의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심지어 이 책이 카프카의 《변신》을 떠올리도록 만든다는 감상평이 있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 사실 이런 이런 것들을 알았기 때문에 내가 서점에가서 주저없이 확신에 찬 발검음으로 '프랑스 문학' 코너에 가서 이 책을 빼어든 것이기도 하다. 어쨌든 나는 책을 읽으며 이 책이 왜 《변신》을 떠올릴만한지 계속 생각하느라 소설에 집중할 수 없었고, 소설이 기대에 못미친다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내가 이 소설의 진가를 알아볼 안목이 되지 않는 것인가하는 찝찝한 마음을 느껴야만했다. 

적어도 '소설'은 읽기 전에 책에 대한 여러 정보를 찾아보기 않겠다. - 고 다짐한다. 



비록 <르 몽드>는 "소재 자체에 외설의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리 다리외세크는 저속성이라는 암초를 피하는 데 성공했다."라고 《암퇘지》를 평했지만 나는 소설을 읽는 내내 불편했다. 

분명 소설의 외설적 요소 때문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소설의 초반부에서는 여자였다가 점점 여자의 몸과 암퇘지의 몸을 오갔는데 두 모습의 공통점은 둘 다 외설적이라는 것이다. 내가 외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꼰대기질이 있는 것일까. 

《암퇘지》에 나오는 주된 테마인 '변신' 테마도 너무 식상했다. 이반이 만월이 뜨면 늑대로 변하는 내용 역시 늑대 인간의 변신 모티브와 정화기 일치해 마리 다리외세크가 그 변신 과정을 매력적으로 묘사해놨긴 하지만 별로 흥미롭지 않았다.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해 사회 풍자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풍자 중에는 분명 젠더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느끼기에 주인공이 성적 위협을 받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