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쩌면 도시가 아닌 자연을 보며 살아야 하는 사람일지도 몰라. 

초등학생일 때 일이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에선 식목일마다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는 사람> 애니메이션을 틀어줬다. 이 애니를 처음 봤던 날을 기억한다. 난 이 이야기에 완벽하게 빨려들어갔고 이 경험은 매년 반복됐다. 내가 아는 모든 이야기 중에 가장 압도적인 이야기였다. 좀더 직관적으로 말하자면 쩔었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한 남자가 황폐한 땅에 홀로 나무를 심는다. 묵묵히, 평생동안. 몇십년 후 황폐한 땅에는 숲이 생겼고 숲이 생기자 그 땅을 버리고 떠났던 동물도 사람도 돌아온다. 

아마 이 이야기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처음엔 미미해보이지만 오랜 시간 꾸준히 하면 여러 사람에게 이로운 일을 할 수 있다'일 것이다. 이 메시지도 좋았지만 나를 더욱 사로잡은 것은 '나무를 심는 행위' 그 자체였다. 

당시 나는 이런 확신을 했다.

이 사람같은 인생을 산다면 죽을 때 후회 한 조각 남지 않고 행복할 수 있겠어.

 어린애가 왜 굳이 죽을 때를 상상하며 이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분명한건 좀처럼 확신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고만고만한 나날을 보내던 와중에 확신의 감정을 느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나무, 숲, 생태주의는 내 주요 관심사로 자리잡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집에 생태주의 관련 책이 꽤 있다. 하지만 좀처럼 읽지 않는다. '어머 이건 사야돼!!!!'라며 꼬박꼬박 책을 사지만... 당장의 돈 버는 문제와 관련 없는 생태주의 책을 읽는건 왠지 사치로 느껴진다.  

스스로에게 민망해서 읽지 못한 점도 있다. 내 데일리 라이프는 형편 없다. 나는 모든 착취를 통해 일상을 영위한다. 생태주의랑 한참 거리가 먼 삶을 흥청망청 엉망진창으로 살고 있다. 이런 주제에 생태주의 책이나 읽으면서 자위하는게 위선으로 느껴졌다. '실천하지 못 할 바엔 위선도 떨지말자'라는 생각. 같잖게 도덕적 우위를 점하고 싶은 마음은 넣어두자란 생각. 

물론 생태주의를 실천하면 되겠지만 사실 난 이게 내 데일리 라이프에서 어떻게 가능한지 감조차 오지 않는다. 유난 떠는 사람이 되면 사회생활이 어렵진 않을까? 내가 그저 도덕적으로 깔끔떨고 싶은 건 아닐까? 서울에서 생태주의적 삶을 산다는건 금수저나 할 수 있는 일이지 나같은 흙수저에겐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태주의에 관심을 갖는건 엘리트주의적인걸까? 이런 물음표가 머릿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나는 가장 간편한 방법_즉 생태주의에 대한 관심을 유예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제 이 경향을 깨봐야겠다. 나의 오랜 관심사이자 애정해 마지않는 주제인 생태주의에 충분한 시간을 쏟고 천착해보자. 

서두가 길었다. 각설하고, 그리하여 <Auroville farms, forest and botanical gardens>을 읽었다. 오로빌에 와서 처음 사서(200루피) 읽은 책. 

                    

책 뒤에는 작은 포스터가 들어 있는데, 나랑 똑 닮은 애가 a way of green living으로의 여정을 떠나는 내용이다. 



Below the hard ledge of my window, the traffic of the street burns its way through the day with unceasing noise. The pressure of traffic, the pressure of work, the pressure of obligations build as I sit in the box of my apartment - fluorescent lights hum. It feels like something's wrong but I don't know what to do about it. 


오로빌은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는 사람'의 현실 버전, 공동체 버전이다. 

<Auroville farms, forest and botanical gardens>는 오로빌이 어떻게 50년 전 황폐한 땅이었던 이곳을 초록이 울창한 곳으로 만들었는지 소개하고 있다. 

남인도 타밀 나두. 오로빌이 있는 곳. 이곳은 250-300여년 전 코끼리와 호랑이가 살았던 TDEF(Tropical Dry Evergreen Forest)이었다. 하지만 ▲The clearing and allocation of forest plots for fuel wood, fodder and cultivation ▲Town and village structural development ▲overgrazing by herds of domesticated animals ▲Introduction of mono-culture cashew plantation 등 이유로 황폐화됐다. 오로빌 1세대가 이곳에 왔을 때는 작렬하는 태양에 그대로 노출된 사막 같은 땅이었다. 

오로빌 1세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나무 심기였다. 오로빌은 1968년부터 현재까지 2 million trees를 심었고 지금도 심고 있다. 지금은 오로빌 어디를 봐도 나무가 울창하다. 수많은 야생동물들이 돌아왔고 길에서 공작새, (아마) 오소리 등 야생동물을 볼 수 있다. 당연히 사람들도 계속 늘고 있다. 그러니까, 오로빌은 현실판 나무를 심는 사람이다.

이 엄청난 결과물을 보고 당연히 소위 '전문가 집단'의 성과일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상상했던 전문가 집단은 영화 마션의 주인공 마크 와트니 같은 사람들이다. 


마션의 주인공 마크 와트니는 식물학 지식으로 화성에서 살아남는다.


하지만 실제는 이와 달랐다. 오로빌 1세대는 식물에 대해서는 물론 타밀 나두 지역에 대해서도 개뿔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나무를 심었고 이 이야기는 오로빌 관련 책 여기저기에서 흔히 접할 수 있다. 이들은 그야말로 '무작정 이것저것 심어보기'에서부터 시작했다.  

때론 나무에 들인 노력이 역효과를 내기도 했다. 나무에 집중적으로 물을 주면 나무는 스스로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릴 필요를 상실한다. 결국 키만 껑충 크고 뿌리는 얕는 나무로 자란다. 이런 나무는 싸이클론 씨즌이 되면 견디지 못하고 모두 쓰러진다. 오로빌리언들은 이런 사실을 몇 년 동안의 시행착오를 통해 터득했다.  

처음에는 황폐화 정도가 너무 심해 원래 지역에 서식했던 토종 나무들을 키울 수 없었다. 이것저것 심어보던 와중에 호주산 아카시아 나무가 잘 자라는 것을 발견해 이 나무를 왕창 심었다. 오로빌에서는 이 나무를 'Work Tree'라고 부른다. 워크 트리는 곧 그늘을 만들어줬고 작렬하는 태양으로부터 대지를 지켜줬다. 워크 트리에서 떨어진 잎들은 자연히 거름이 됐다. 이게 몇 해 반복된 후 오로빌리언들은 토종 나무들을 심을 수 있게 됐다. 

오로빌의 reforestration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the next challenges'는 나무들이 스스로 regenerating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자연 상태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오로빌은 현재 토종 speciese들이 스스로 regenerating 하는 수준으로 숲을 재생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책에는 오로빌의 숲 세 군데를 소개하고 있다. 

-The Auroville forest 
-Sadhana Forest 💖💖💖💖💖💖💖💖💖💖💖💖💖💖💖💖💖💖
-Pitchandikulam forest 

위 세 곳이다. 

사다나 포레스트에 대해서는 할 말이 아주 많으므로, 이 글에선 하지 않고 따로 글을 쓰겠다.

대신 이 글에선 Pitchandikulam forest에 대해 적어놓겠다. 이 포레스트는 <Auroville farms, forest, and botanical gardens>에서 처음 알게된 포레스트인데 이곳에는 Bio-Resource Centre가 있어 다양한 활동을 한다고 나와 있다. 

그 활동들은 
-a library and database to help with sustainable community planning
-documentation of the knowledge of more than 200 local healers
-publishing of a bio-regional newsletter and teaching materials
-etc

대략 위 같은 것들이 있는데 하나하나 다 흥미롭다. 오로빌에 머무는 동안 여기를 꼭 가봐야지!!!!!!

사실 책은 오로빌의 농장들에 대해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유기농 농업에 대한 설명, 이 방식을 향한 비판에 대한 재반박 등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A number of allegations tend to stigmatize organic farming as primitive, unenlightened, an unproductive enterprise, good for the rich who can afford its produce but insufficient to feed the mass of the world's population. These charges are typified by remarks such as "Will organic farming feed the world?" or "Remember that organic farming brought about huge famines in the past". It could be argued that no agricultural system will ever feed the 'world'. All points to the fact that only a drastic change in mindsets and lifestyles, a veritable paradigm shift, can lead to a socially just and hunger-free world. 

덧) <진정성이라는 거짓말>에 유기농 농업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나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