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미국 책구경에 이은 2022 파리 책구경! 


영국에는 분명 끝내주는 서점들이 많았을테지. 오래전부터 영국에 가게 되면 이 서점들을 하나하나 구경할 소망을 품고 있었다. 특히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까지 여성 작가들이 쓴 작품을 발굴, 재출간하는 출판사 겸 서점인  Persephone Books (관련 포스팅) 에 가고 싶었다. 사고싶은 책을 마음껏 살 수 있는 어엿한 어른이 되면 페르세포네 북스에서 출간된 여성 작가들의 작품들을 잔뜩 사서 내 방에 진열해놓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첫 영국은 출장이었고 책구경을 전혀 하지 못 했으니, 이것이 못내 아쉽다. 


런던 출장, 네덜란드에서의 오랜 친구와의 조우를 거쳐 프랑스로 넘어왔을 때 비로소 혼자가 될 수 있었다. 즉 프랑스에서 그나마 책구경을 조금 할 수 있었다. 처음 떨어진 프랑스 도시는 니스. 니스는 바다를 낀 휴양지였고 괜찮은 서점이 눈에 띄지 않았다. 서점다운 서점들은 파리로 넘어왔을 때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아니, 너무 멋진 서점들이...! 


한 가지 안타까웠던 점 - 눈 앞에 펼쳐진 흥미로워보이는 책들이 내가 해석할 수 없는 활자(프랑스어)로 적혀있다는 것. 텍스트를 마주한 자가 절망에 빠질 때는 그 텍스트가 모르는 언어로 돼 있을 때가 아니던가. (이 절망이 싫어서 한때 영어단어를 열심히 외웠는데, 언젠가 기운이 또 나면 마음껏 원서로 읽고싶은 언어를 하나 골라 공부하겠다 - 는 다짐을 남겨둠)


어찌되었든, 이런 안타까운 사정으로 나의 파리 책구경은 'English-language Bookstore'로 다소 한정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주 만족스런 책구경이었기에, 이 포스팅을 기록으로 남긴다. 


@des femmes 




des femmes는 여성 작가들의 책을 모아둔 서점이다. 


네덜란드에서부터 읽기 시작한 beat generation 작가들의 작품이 여느 남성 작가가 쓴 글이 그렇듯 형편없이 빻았기 때문에 나는 꽤나 짜증이 나 있었고, des femmes를 꼭 들려야 했다.


des femmes에서 영어 책은 정말 딱 한 칸 뿐이었다. 영어책 섹션에서는 흥미로워 보이는 책을 찾지 못 했다. 별수 없이 프랑스어 섹션으로 눈을 돌리니 너무 흥미로워 보이는 책들이 눈앞에 가득했는데, 독해할 수 없다는 현실에 심통이 났다. 


하지만 나는 서점에 들어설 때부터 이 서점에서 지갑을 열기로 마음을 먹은 바. 서점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어슬렁거리다가 찾은 책이 <Femmes photographes>, 여성 사진작가들의 작품과 작가 설명을 모아놓은 3권짜리 세트집이다.  






책을 살 때부터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고 싶었다. 이 책을 좋아할만한 누군가에게. 


선물로서의 책 이야기가 나와서 덧붙이자면, 나는 책구경을 할 때 늘 그때그때 가깝게 교류하는 이들에게 주고픈 책 선물을 찾는다. A는 최근 뜨개질에 취미를 붙였다고 했으니 뜨개질에 대한 책을 찾고 B는 요가를 하니까 요가에 대한 책을 찾고 C는 아주 큰 음식 사진이 있는 요리책을 좋아하니까 요리책 섹션을 두리번거리고, D의 딸이 곧 글씨를 익힐테니 딸에게 선물할만한 귀여운 어린이책을 찾는 식이다. 이번 여행 내내 E에게 주고싶은 책을 고르면서 서점을 어슬렁댔다. 그런데 막상 고르자니 E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거의 아는 것이 전무하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리하여 결국 포기. 이와 같은 이유, 또 이런저런 이유로 실제로 책을 사서 선물하는 경우는 드물다.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책)을 선물하는 것 같아 너무 자기중심적이지는 않을까하는 노파심과 함께 상대가 책 읽기 과제를 받은 것같은 부담을 느끼지는 않을까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책 선물을 하고 절대 그 책을 읽었냐고 묻지 않는다.) 


@SHAKESPEARE AND COMPANY





뉴욕에 Strand Bookstore가 있다면 파리에는 SHAKESPEAR AND COMPANY가 있다. (보수 공사 중이어서 앞에서 바라보기만 했던) 노트르담 대성당과 세느강 옆에 자리한, '레전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서점 -  


(태어나서 처음 서점에) 줄을 서서 들어가 마주한 첫 번째 섹션은 BEAT GENERATION 섹션.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를 읽고 있던 차, 앨런 긴즈버그의 시를 좀 읽어볼까 하다가 역시 시집은 어차피 사도 안 읽겠지? 그럼 닐 캐서디를 찾아서 읽어봐야겠다고 하던 찰나, 비트 세대 섹션과 마주친 것! 비트 제너레이션 섹션이 따로 있는 서점은 난생 처음이다. 알고보니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비트 제너레이션 문화가 탄생한 곳이라는 것....!! ... ㅠㅠ 나는 닐 캐서디를 한 권 데려왔다. (그렇게 데려온 닐 캐서디 - fox도 이런 fox가 없다. 루시안 카에 잭 케루악에 닐 캐서디까지 - fox overload. 앨런 당신은 대체...)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비트 제너레이션 작가들뿐 아니라, 이름만 대면 알법한 수많은 문인들이 거쳐간 곳이다. 문학과 예술, 사상의 둥지 - 말그대로 둥지 - 라는 말이 어울리는 2층은 언젠가 내 집을 갖게 된다면 꼭 이렇게 인테리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공간이었다. 군데군데 놓인 침대. 과거 이 침대에서 실제로 젊고 가난한 문인들이 잠을 청했다고 한다. 


서점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다음 서점의 모토가 잘 드러낸다. 


BE NOT INHOSPITABLE TO STRANGERS LEST THEY BE ANGELS IN DISGUISE


2022년에 이토록 상업주의를 비껴간 환대의 분위기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수많은 손님을 맞는 (그래서 상업적으로 건장한) 서점을 실제로 들를 수 있다는 것은 큰 영감이자 행운이다. 


서점의 (말하자면) 2대 주인인 George의 말에서 그 환대를 간접적으로나마 떠올릴 수 있다. 


I created this bookstore like a man would write a novel, building each room like a chapter, and I like people to open the door the way they open a book, a book that leads into a magic world in their imaginations

This is book as batteries, recharge moments, envelopes of energy sent across the world with love." 


또 아래 구절에서도 

This purposeful, practical view of art and culture assumes they are essentials you can't measure by totting up their net worth to the economy. It is the opposite of the propaganda war against art and culture where creativity is misrepresented as a luxury item to be crossed off the list in hard times. 


환대같은 뜨뜨미지근한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고 일단 매출을 내고 살아남아야지 - 에 사로잡힌 서점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 관광 명소인 동시에 아직도 문인들의 둥지 역할을 현역으로 소화하고 있는 곳. 그 유명하다는 모나지라를 직관한 것보다 더 흥미로운. 다시 파리에 갈 수 있다면, 가장 먼저 들릴 곳. 


@THE ABBEY BOOKSHOP




정말 끝내주게 친절한 사장님과 끝내주게 아슬아슬 쌓여있는 책더미가 있는 THE ABBEY. 영어 책을 다루었기에 나는 그나마 독해가 가능한 책들을 구경할 수 있었고, 이곳에서 꽤 머물렀다. 사장님이 권한 차를 홀짝이며 책장이기도 한 문짝을 닫지 못해 낑낑대는 초짜 스태프로 보이는 앳된 얼굴의 직원을 바라보며. (도와준다고 할까? 속에서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돕지 못 함) 


계산대 옆에 있는 rare books 섹션을 둘러보고 싶었지만 쑥스러워서 그러지 못함.


THE ABBEY가 좋았던 것은 NEW BOOKS, USED BOOKS, AND RARE BOOKS를 모두 다룬다는 점이다. USED BOOKS를 파는 서점은 언제나 마음에 편안함을 주는 동시에 어떤 사연이 있는 재밌는 책을 발견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THE ABBEY에서 100살이 넘은 귀여운 단편집을 엎어왔는데, 오래된 책들은 대개 귀여우므로 읽지 않아도(왠지 읽을 것 같지는 않다) 기념품으로 데려오고 싶었기 때문이다. 




파리 책 구경 한 줄 정리. 파리는 찌린내나고 거만함이 흐르는 도시이지만 그럼에도 파리가 사랑스럽다면 그건 너무 귀여운 서점들이 있기 때문이고 -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시 파리를 방문했을 때도 이 서점들이 강건하게 자리하기를 온마음으로 바라본다. 


덧. 아 런던에도 정말 끝내주는 서점이 많았겠지... 젠장..ㅁㄴㅇ로;ㅐㅈ댜효ㅔ맨야럼;ㅇ니ㅏ롬;ㄴㅇ소너ㅑ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