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발을 들여놓게 된 골목길. 평소 다니는 길로 갔다면 전연 만날 일 없는 사람과 마주쳤는데, 그가 나와 똑같은 표정 - 이를테면, 아주 곤란하고 울먹이는 -을 하고 있는 상황. 그래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교류를 하게 된 상황. 

일본 만화책 <너무 외로워서 레즈비언 업소에 간 리포트>를 처음 펴든 때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가까운 친구 5명의 평균이 그 사람이라는데 내 친구들의 표본을 어떻게 잡든 나와 어슷비슷한 사람이 없다고 느끼는 찰나, 나랑 비슷한 사람을 만난 것이다. 

((덧붙이자면, 나는 돈으로 성을 사고파는 것에 반대한다. 내가 철저히 반대하는 짓거리가 에피소드 중심을 차지하는데 내가 이런 감정을 느낀 것은 다소 당황스런 일이다.))

<너무 외로워서 레즈비언 업소에 간 리포트>는 내가 두 번째로 갖게 된 19금 만화책이다. (첫 번째 만화책은 몇년 전 한 페미니즘 행사에서 구입). 타이틀에 '레즈비언 업소'가 들어가 자극적이지만 사실 이 책은 일반적인(?) 19금 책이랑 전하는 메시지가 다르다. 

만화는 "대학을 반년 만에 퇴학한 뒤 문득 깨닫고 보니 우울증과 섭식장애에 빠져 있었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 짧은 문장이 완벽한 서사로 다가왔다. 나도 요근래 비슷한 서사를 하나 써내려 가고 있는 기분이다. 내경우엔 '문득 깨닫고 보니 우울증과 폐병에 빠져 있었다' 쯤으로 변주될테지만. 

만화 내용은 제목 그대로. '너무 외로워서 레즈비언 업소에 간' 작가의 자전적 논픽션이다. 

만화가는 28년까지 성경험이 전무한 일본 여자. 성에 대해 생각하는 것조차 죄악시여기던 사람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이런 각성을 한다. 


나에게 더 이상 실망하는 것도 이제 한계. 매일매일 24시간을 1초도 쉬지 않고 괴로웠기에 아무리 생각해도 죽는 게 더 속편했다. 하지만 삶보다 죽음의 이점이 명백하게 많다고 생각하자 의외로 분했다. 이렇게 된 거 밑져야 본전으로 다시 일어서도록 발버둥 친 뒤 죽어 주마. 라고 생각했다.

사실 흔한 얘기다. 오랜 시간 죽음을 생각하다 죽음을 긍정하다, 문득 밑져야 본전으로 반대급부로 달려가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는 대개 '그래서 내가 무슨무슨 노력을 했고, 그랬더니 한때 죽음까지 생각했던 내가 이만큼이나 성공했어!!!' 식으로 흘러가는데 <너무 외로워서 레즈비언 업소에 간 리포트'도 비슷하다. 다른게 있다면 '무슨무슨 노력을 했다'라는 서사에 등장하는 노력에 레즈비언 업소에 간, 다소 황당하고 사회적 성공과 전혀 상관 없는 일이면서도 만화를 읽다보면 지극히 현실적이게 느껴지는 노력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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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를 읽으며 눈물이 났다. 만화가가 느낀 그 외로움을 알 것 같기에 그 고통을 알 것 같기에. 작가는 이 감정들을 '레즈비언 업소를 가게 전-가서-갔다 와서'로 이어지는 리포트로 잘 보여주고 있는데 이 지긋지긋한 감정들을 나 대신 만화가가 말해주고 있어 속이 시웠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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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혹시 사무치게 외롭다면 ㅡ  마음이 너무 지쳐서 너덜너덜해졌다면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