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급만남을 한 S는 시 읽는 사람이 좋다고 했다.

얼마 전 술에 취해 전화 했을 때 얘기했던 그 자기가 좋아한다는 사람도 시를 읽는 사람이라고 했다.

시를 읽는 사람이라면, 다른건 괜찮다고. 나이가 많아도 외모가 이상형이 아니어도 된다고. 시를 읽으니까.

왜 시 읽는 사람을 예외로 두냐고 물었다.

S 왈. "시를 읽는 사람은 뭔가 다른 게 있어. 만약 나쁜 사람이라고 해도 그냥 나쁜게 아니라 뭔가 나쁜데 나쁘지 않은게 있고. 하여튼 뭔가 달라."

시를 읽지도 않고, 누군가와 시에 대해 이야기해본 적도 없는 나는 딱히 어떤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어서,
'그렇구나. 나는 개발하는 사람이 그렇게 멋지더라고.' 라는 쓸데 없는 이야기로 응수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오늘 <글쓰기의 최전선>을 읽는데 시에 대해 나왔다. '쓸모-없음의 시적 체험'이란 파트에서였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안 읽히는' 김수영의 시-삶이지, 김수영의 시-삶을 이론의 형틀로 찍어낸 '잘 읽히는' 지식인의 해석이 아니다.

시의 본령은 지식의 확장이 아니라 삶의 결을 무한히 펼치는 데 있다. 시가 아무리 어려워도 처음 읽을 때는 참고도서를 들춰보지 말자고 당부했다.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고, 시는 패배자의 기록"이라는 이장욱 시인의 말을 알 것도 같았다. 승리자의 메시지만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세상에서 마음 붙일 곳 없던 영혼들이 패배자가 지은 말들의 풍경에 기대어 한 세상 숨 돌리고 간 것일 게다.

시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강렬히 든다.

If a poem hasn't ripped apart your soul; you haven't experienced poetry. -Edgar Allan Poe  

시, 대체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