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사에 빠졌다. 한국사 책을 읽을 때면 왠지 죄책감이 든다. 소설을 읽을 때 드는 것과 비슷한 죄책감이다. 이를테면 '보다 실용적인데 온 정력을 쏟아야 하는데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게 아닐까'하는 싱숭생숭한 마음. 오늘의 역사를 따라가지 못하면서(요즘 뉴스를 챙기지 못하고 있다), 오늘의 역사에 일조하고 있지 않으면서 과거의 기록에 침잠하는 것 같아 찝찝할 뿐이다.

뒤를 멀리 돌아볼수록 앞을 더 멀리 내다볼 수 있다. -윈스턴 처칠
하지만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 더구나 태어나서 처음 역사에 꽂혔는데 쉬 덮을 수는 없다. 이런 마음으로 책장을 둘러보니 의외로(?) 역사 관련 책들이 꽤 많았다. 가장 먼저 읽은 책은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e북)_설민석_과 <교과서 밖으로 나온 한국사-조선>_박광일·최태성_이다. 조선 시대사 입문서로 딱 알맞은 책들이다. 나는 'KBS 역사저널 그날'을 찾아보면서 두 권을 동시에 읽느라 시간이 꽤 걸렸는데 마음먹고 책 한 권만 붙잡고 읽으면 하루면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보길 권한다.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은 태조 이성계부터 27대 순종까지 조선왕조 500년 역사를 왕 순서대로 설명해놓았다. 무한도전 '역사X힙합'편에 출연해 스타 강사의 자리를 제대로 굳힌 설민석 선생이 책 속에 들어앉아 말해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쉽게 잘 읽힌다. 설민석 선생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목소리가 음성지원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도. 조선왕조실록인 만큼 조선의 역사에 초점을 맞췄다.

<교과서 밖으로 나온 한국사-조선>은 문화재 사진이 많이 삽입돼 있어 텍스트로만 이뤄진 책에 비해 볼거리가 많다. 각 장이 시작되는 부분에서 조선왕조실록을 쓴 사관들이 '사관이 논한다'라며 논평을 단 것처럼 짧은 글이 정리돼 있다. 고려 말부터 22대 정조대 까지 내용을 담고 있다. 이후 대한제국 등 내용은 '근현대' 편에서 이어진다.

조선사를 읽으며 갑갑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명분'과 '예'에 집착하며 권력 다툼을 하느라 백성의 고난은 안중에도 없고 오히려 가중시켰던 세력들. 여성 운신의 폭을 '대를 잇는 역할'로만 제한해 놓고서 '시기·질투가 많았다'느니 여성을 비난하는 논평들. 류성룡이 <징비록>을 남기며 경험에서 배우고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또다시 온 나라를 호란의 손아귀에 넘겨준 어리석음.

타임머신이 있다면 뜯어 고쳐놓고 싶은 부분이 한 두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 새해 다짐으로 역사를 알고 역사에서 배울 것을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