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언제나 마약같았고 애인같으며 삶에 애착을 갖게하는 묘약같은 존재다. 책에 대한 나의 애정은 <책벌레>라는 클라스 후이징의 장편소설을 만나면서 더 깊어졌다. 아직도 이 책을 처음 만난 날이 생생하다. 천호동 교민문고에서 나는 이 책을 만났다. 제목에 끌려서 뽑아든 책이었다. 표지에는 머리위로 쏟아지는 책들 사이에서 정신없이 책을 읽고 있는 한 남자가 그려져있다. 입을 약간 벌리고 책에 정신이 팔려있다. 책을 빼들면서 나는 이 책을 구입할 것을 직감했고 표지를 보고 나의 직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던 기억이 난다. 


다음 글은 고1때로 추정되는 시기에 <책벌레>를 읽고 썼던 글이다. 


-클라스 후이징의 <책벌레>를 읽고

나는 책을 많이 읽지는 않지만 항상 책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항상 책벌레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봤을때 너무 마음에 들었다. 
책의 내용은 현대의 책벌레인 팔크 라인홀트로부터 시작한다. 팔크는 슈바빙의 한 고서정에서 책에 대한 광적인 탐식 끝에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역사의 갈피속으로 사라져버린 괴테 시대목사 요한 게오르크티니우스를 만난다. (물론 책을통해) 이 세기를 건너뛴 두 책벌레의 운명적 만남! 흥미진진하고도 책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깊은 고찰이 보이는 소설이다. 

책에는 '책의 제목은 그 사상을 결정짓고 요약하는 것이 아닌 혼동시키는 것이여야 한다'는 말이 있다. 책을 읽으며 정말 절실히 느낀것은 필독도서 따위나 논술대비를 위해 읽는 책이 아닌 시험 따위에 억눌리지 않고 실컨 책을 읽고 싶다는 것이다. 물론 필독도서 따위는 울렁증이 난다. 진정한 책벌레들은 죽으면서도 그 순간에도 이 세상의 그 많은 책들을 다 읽지 못하고 죽는 것을 아쉬워한다고 한다. 나도 꼭! 죽기전에 책을 많이 아주 많이 읽을 것이다. 이순원의 장편소설 <19세> 중에 사람이 가방끈이 길고 짧음은 잘 모를 수 있으나 책을 많이 읽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몇 마디만 나누어보면 알 수 있다고 주인공의 아버지가 주인공에게 하는 말이 있다. 이렇게 많은 책들은 스스로 책의 소중함을 우리에게 일깨워주려한다. 나도 언젠간 지식인의 반열에 올라 책에 대해 진정한 고찰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거의 8,9년 전인 이 글을 읽고 나는 웃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선배의 말마따나 사람은 정말 쉽게 변하지 않나보다. 2006년에도 그토록 '지식인의 반열'에 오르길 갈망했었다니.

좀 더 어린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어린시절 나의 소망중에는 천장까지 닿는 책장에 책을 가득 채우는 것이 있었다. 적어도 나는 이 소망을 이룬 것 같다. 지금 책상을 빼고 그 자리에 책장을 넣으려는 작업을 하고 있다. 방이 훨씬 넓어질 것이고 책도 보다 질서정연하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건 분명 좋은 징조다. 





<책벌레> p73
예, 엄마 말이 맞아요. 너무 비싼 책들은 함부로 사지 말고 돈을 아껴 써야죠. 엄마가 수표를 보내주지 않았더라면, 그럼 책들은 살 엄두도 못냈을 거예요. 엄마에게 다시 한번.....그야, 난 원체 수학을 좋아하지 않았잖아요. 하지만 독일어는....맞아요, 클라우디우스 선생님. 그분이 내게 독서의 열정을 불어넣어주셨죠. 아, 벌써 정년퇴임하셨군요. 하지만 엄마, 잊어버렸나본데....내가 지금처럼 책벌레가 된 데에는 분명 엄마 책임도 있어요.

(중략)

그럼 우리 다른 얘기를 해요. 60,000권의 책을 소장하려면 2,400m의 공간이 있어야 하고, 서가 7칸을 천장까지 올리면, 2,400÷7= 약 343m의 면적이 필요하다. 예,엄마. 이제 책 놓을 공간이 부족해요. 침대도 방 한가운데로 옮겼어요. 벽 네 개가 다 필요하니까요. 343m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