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 홈페이지를 둘러보면 출판계가 그때그때 팔리는 키워드, 감수성을 얼마나 간편하게 '복사+붙여넣기'해 가판대를 채우는지 알 수 있다.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는 (과연 대중을 사로잡은 것인지 대중에 주입된 것인지 헷갈리지만) 소재로 책을 만들어야 많이 읽히고 돈이 되는 까닭이니 욕할 문제는 아니다. 다만 그때그때 유행에 편승해 나온 책들은 내게 좀처럼 낱개의 책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힐링 열풍이 불었을 때 나왔던 책 중 하나' 따위로 기억된다.
이런 관점에서 임종국이 쓴 <친일문학론>은 존재감이 강력크. 임종국은 '사람들이 관심 갖는 것', '그래서 연구하면 주위의 인정을 받는 것', '종국에는 돈이 되는 것'과 정반대 방향으로 갔던 사람이다. 그는 사람들이 애써 관심 갖지 않으려고 하는 것, 그래서 연구를 하면 배척을 감당해야 하는 것, 경제적으로 볼 때 인풋 대비 아웃풋이 초라한 책을 썼다.
임종국이 너무 궁금해 정운현(현 국무총리 비서실장)이 쓴 <임종국 평전>을 읽었다.
--저자 정운현
평전을 읽으며 그 주인공만큼 평전을 쓴 저자에 관심이 가긴 또 처음이다.
<임종국 평전>을 쓴 정운현은 개인연구실에 '임종국을 보배로 여기는 연구실'이라는 뜻의 '보림재'를 현판으로 내걸었을 만큼 임종국에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평전에서 임종국의 일생과 업적을 어느 것 하나 미화하지 않는다. 철저히 검증하고 평가하고, 때로는 반박과 비판을 가한다.
나아가 <친일문학론>을 다룬 문덕수와 유종호의 비평까지 소개하고 이에 대한 논평까지 곁들여준다. 그 자신이 <친일, 청산되지 못한 미래>를 비롯해 친일 관련 책을 여러 권 쓴 전문가여서 임종국의 친일 연구를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검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정운현은 임종국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래서 더욱 객관적으로 임종국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굳이 꼽자면 같은 내용이 같은 문장으로 중복되는 부분들이 있다는 것. 같은 문장으로 쓰인 것은 " "로 인용했기 때문이기에 일면 이해되기도 하지만 좀 더 신경썼다면 문장을 재활용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주인공 임종국
임종국은 천재였다고 한다. 그 자신도 그렇게 인식했고 고대 재학 시절엔 철학의 신일철, 어학의 민영빈과 함께 '3천재'로 불렸다고.
그런데 이 천재는 중퇴 인생을 살았다. 소학교를 빼고는 어느 곳 하나 제때 제대로 졸업한 것이 없고, 음악가가 되려했다가 선생을 준비하기도 했다가 잠시 사시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리도 이 모든 것들을 중도 포기했다. 여기저기 기웃기웃한 곳도 많고 주위의 상황 등 때문에 중간에 포기한 것도 많았던 인생.
임종국이 고향 삼았던 분야는 '문학'. 그가 낸 첫 번째 책은 3권짜리 <이상전집>인데 고대 재학 시절 냈다.
이상. 문학에 문외한인 나조차 알고 있는 그 천재 시인. 스스로를 천재로 인식했던 임종국은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라고 말을 건네는 이상에게 '꽂혀' 단 기간 안에 <이상전집>을 완성했다. 이 책 전까지는 이상에 대한 연구가 거의 전무했다.
문학을 사랑하고 문학을 고향으로 여겼던 임종국. 그의 역작 <친일문학론>은 고향인 문학을 떠나 벌인 일종의 '외도'였던 셈이다. 이 외도를 하게 된 것은 1965년 한일회담이 결정적이었는데 "대학생이 아니니 (한일회담 반대) 데모 행렬에 끼이기는 그렇고 해서 혼자서 '데모'를 좀 해봐야겠다고 다짐했다"해 나온 것.
<친일문학론>. 이전까지는 그 누구도 엄두를 못냈었던 연구의 결과물. 이 책에서 친일한 것으로 고발된 문인들 태반이 책이 출판됐을 당시 살아 있었고 또 그 범위를 가까운 관련인으로 확장하면 현역에서, 그것도 주류로 일컬을 수 있는 학계/문학 판에서 활동하고 있던 사람들은 수없이 많았다. 누군가를 실명 비판하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지 알기에 임종국의 용기에 감탄.
문단의 내로라 하는 거물들을 실명으로 비판하고 나섰으니 상식적으로 본다면 언론도 대서특필하고 또 당사자들도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명예훼손이니 어쩌니 난리법석을 피웠을 만도 하다. 그러나 이런 예상은 보기좋게 모두 빗나갔다. (후략)
그런데 <친일문학론>에 대한 학계, 문학계의 반응은 영 싸늘했다. 비판을 정면으로 서슬퍼렇게 들이대는데 노발대발하기엔 워낙 팩트로 조지는 것이여서 면이 안 서고 말발도 안 서니 그냥 무시하기 전략을 쓴 것이다. 그 결과 이 역작은 당시 충분히 토론되지 못한 것 같다. 전문가의 논평에서 제외된 책은 독자의 눈에 띌 기회도 적었다. 책은 예상만큼 많이 팔리지 않았다. 이에 임종국은 평화출판사에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는데 ...... 독자로서 마음이 조금 아팠다. 훌륭한 책은 정당한 평가와 주목을 받아야 한다.
소문(?)에 "임종국이 잘못 건드렸다가 그가 가진 자료 다 공개되면 되레 똥바가지 뒤집어쓴다"는 얘기가 그 업계(?)에선 나돌았던 모양이다. (후략)
읽으면서 짜릿했던 대목.
짜릿했던 대목이 또 하나 있다. 임종국이 아버지와 대화를 나눈 내용이다. 임종국이 연구를 하다보니 자신의 아버지가 친일 행위를 한 기록도 찾게 됐다. 그는 아버지 임문호에게 '아버지! 친일 문학 관련 책을 쓰는데 아버지가 학병 지원 연설한 게 나왔는데, 아버지 이름을 빼고 쓸까요?'라고 말하자 임문호 왈,
내 이름도 넣어라. 그 책에 내 이름 빠지면 그 책은 죽은 책이다.
(심쿵..)
저자 정운현은 <친일문학론>의 의미를 논하되 마냥 찬양조로 소개하지 않는다. 잘못된 부분은 근거를 가지고 반박하고, '대동아공영권' 동조 발언 등에 대해서는 '납득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이러이러하다~. 임 선생의 주장과 그에 대한 내 반박을 모두 써놓으니 독자 여러분이 판단하시라'라고 한다.
책을 다 읽고 덮은 이 시점에서 궁금한 점은 임종국 이후 친일 문학 관련 연구가 얼마나 더 진척됐느냐의 문제다. 그가 피를 쏟아 쓴 <친일문학론>이 시발점이 돼 이후 문학평론가들은 성실히 친일 문학 연구를 진척시켰을까? 이건 나중에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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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국 평전>을 읽으며 책을 덮어버리고 싶은 위기가 있었다. 그의 '한남'적 기질 때문이다.
임종국은 2번 결혼했고 첫 번째 아내와 이혼-다시 화합-최종적 이혼, 이렇게 두 번 이혼했다. 그는 여자를 때리는 남자였다. 아내와 여동생들에게도 손찌검을 하곤했다. 이들에게 저질렀던 괴팍도 그 일화들을 듣고 있노라면 옆에 두고 상종할 수 있는 인간상이 아니다. 그가 남자를 폭행했다는 일화는 책 어디에도 없다. 가족들 중 여성에게만 폭력을 휘둘렀다.
폭력의 정도는 심했던 걸로 보인다. 혁대를 풀러 때렸고 치아가 영구적으로 변형될 정도로 때렸다. 책에 임종국 주변인이 기억하는 그의 성격이나 인품에 대해 여러 번 나오는데 대개, 훌륭하다는 품평이 많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박노준은 임종국에 대해
"아주 곧고, 유순하고, 원칙주의자임. 인정도 있으나 사회성 없음. 직장 생활 체질 아님.", "조용하고, 목소리는 작고, 말은 어눌한 편. (중략) 성격이 소박하고 순수하고 선한 사람. (후략)"
'조용하고, 유순하고, 소박하고 순수하고 선한' 사람이 여동생과 아내를 모질게 팼으니, 이 부분에서 눈이 멈출 수밖에 없다.
사실 나는 이런 남자들을 아주 많이 알고 있다. 대개는 선하고 유순하지만, 여자에게 개차반으로 구는 남자들을. 여자에겐 그래도 된다는 무의식에서 나온 폭력들을.
저자 정운현 선생은 임종국의 이같은 면도 평전에 담으며 이렇게 말한다.
(부부간의 일을 제3자가 자세히 알기는 어렵다. 또 설사 자세히 알고 있다고 해도 이는 사생활의 영역이기 때문에 자세히 쓰기 어렵다. 자칫 본의 아니게 당사자들의 명예를 손상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종국의 집안 가정사를 대략이라도 언급하는 이유는 그가 '공인'이기 때문이다. 그가 장삼이사라면 관심도 없고, 또 쓸 가치도 없다. (후략)
저자가 주인공의 부정적 면모도 독자에게 의무감을 가지고 밝힌 점에서 저자를 다시 한 번 신뢰하게 한다. 미화 일색의 평전, 구색맞추기 식으로 '다만 이런 면도 있다고' 식으로 부정적 측면을 축소하는 평전을 읽는건 시간 아까운 일이다.
다시 임종국으로 돌아가면, 그는 업적과 별개로 매우 가부장적인 사람이었다. 평전 곳곳에 드러나는 바에 따르면 그는 그 시대 남자들의 전형적인 가부장적 인식의 전형이다. 여성을 오직 자신의 사적 영역에 머물며 자신을 서포트 하는 존재로만 인식했고, 그 이상은 상상하지 못했다. (상상력의 빈곤)
아내가 자신에게 고분고분하길 원했고 그러지 않을 경우 같잖은 자존심을 내세우며 폭력을 휘둘렀다. (그의 두 번째 아내는 첫 번째 아내와 달리 복종적이고 고분고분한 스타일이었다. 부부 사이에 '복종적'이라는 설명이 나온다는 것은 얼마나 비극인가. 부부 사이가 아니라 그 어떤 관계에서도 그럴진데 하물며 가장 가까운 부부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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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국은 1929년 태어나 내가 태어나기 한 해 전인 1989년 바람이 되었다. (그는 생전 죽어서 '바람'이 되고자 했다고). 임종국은 <친일파총사>를 집필하다 완성치 못하고 세상을 떠났는데, 그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그가 "피를 팔아" 하다가 죽어서 이어가지 못했던 친일 연구는 어떤 후학이 이어나가고 있나.
덧)
<친일문학론>은 꼭 초판본으로 손에 넣고 싶다. (아.... 책 사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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