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책 모임에서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인 <편의점 인간>_무라타 사야카_를 복작복작했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지만, 내 뇌는 휘발성이 너무 강하니까 정리되지 않은대로 생각의 편린들을 적어놓는다. 

먼저 소설의 내용은 책을 읽으며 밑줄 쳐둔 아래 문장들로 갈음한다. 

-그때 나는 비로소 세계의 부품이 될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내가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세계의 정상적인 부품으로서의 내가 바로 이날 확실히 탄생한 것이다. 

-지금의 '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거의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다. 3할은 이즈미 씨, 3할은 스가와라 씨, 2할은 점장, 나머지는 반년 전에 그만둔 사사키 씨와 1년 전까지 알바 팀장이었던 오카자키 군처럼 과거의 다른 사람들한테서 흡수한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 전염하면서 인간임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거 남자의 본능에 어울리는 일이 아니군요." 시라하 씨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조몬시대부터 그렇잖습니까. 남자는 사냥하러 가고, 여자는 집을 지키면서 나무 열매나 들풀을 모아놓고 남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지요. 이런 작업은 뇌 구조상 여자한테 알맞는 일이에요."

-이상한 사람한테는 흙발로 쳐들어와 그 원인을 규명할 권리가 있다고 다들 생각한다. 

-무언가를 깔보는 사람은 특히 눈 모양이 재미있어진다. 그 눈에는 반론에 대한 두렴움이나 경계심, 또는 상대가 반발하면 받아쳐줘야지 하는 호전적인 빛이 깃들어 있는 경우도 있고, 무의식적으로 깔볼 때는 우월감이 뒤섞인 황홀한 쾌락으로 생겨난 액체에 눈알이 잠겨서 막이 쳐져 있는 경우도 있다. 

-내가 보기에 차별하는 사람은 두 종류가 있다. 한 부류는 차별에 대한 충동이나 욕망을 자기 내면에 지니고 있지만, 또 한 부류는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여 아무 생각 없이 되는대로 차별 용어를 연발할 뿐이다. 시라하 씨는 후자인 것 같았다. 

-내가 이물질이 되었을 때는 이렇게 배제를 당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정상 세계는 대단히 강제적이라서 이물질은 조용히 삭제된다. 정통을 따르지 않는 인간은 처리된다. 

-"이 세상은 이물질을 인정하지 않아요. 나는 줄곧 그것 때문에 괴로워해왔어요."

-"단지 소수파라는 이유만으로 다들 내 인생을 간단히 강간해버려요."

-인생이 강간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남의 인생을 똑같이 공격하면 마음이 다소 개운해지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 속에 있는 '보통 인간'이라는 가공의 생물을 연기하는 거예요"

-모두가 이상하게 여기는 부분을 내 인생에서 소거해간다. 고친다는 건 그것을 말하는지도 모른다. 

-"당신 자궁도 무리의 소유예요. 쓸모가 없으니까 거들떠보지 않을 뿐이죠. 나는 평생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죽을 때까지 평생 누구한테도 간섭받지 않고, 그냥 숨을 쉬고 싶어요. 그것만 바라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은 보통이 아닌 인간을 재판하는 게 취미예요. 하지만 나를 쫓아내면 더욱더 사람들은 당신을 재판할 거예요. 그러니까 당신은 나를 계속 먹일 수밖에 없어요."

"나는 줄곧 복수하고 싶었어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기생충이 되는 게 용납되는 것들한테. 나 자신이 기생충이 되어주겠다고 줄곧 생각하고 있었죠. 나는 오기로라도 후루쿠라 씨한테 계속 붙어살 겁니다."

-이제 편의점 점원이기 전에 인간 암컷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물음.

'나는 소수파인가? 혹은 다수파인가?' 
'나는 타인의 인생을 강간한 적이 있는가? 또 내 인생은 타인에게 강간당한 적이 있는가?'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난 다수파에 가깝다. 소수파가 될 여지가 다분하지만, 동시에 다수파에 속할 요소가 내겐 너무 많다. 

그렇다면, 나는 누군가의 인생을 재판하고 참견한 적이 있는가? 또 재판받고 참견받은 적 있는가? 두 질문에 대한 답변은 모두 '그렇다'. 

나는 너무 쉽게 누군가의 인생을 재판한다. 그 근거란 예상하다시피 너무 얄팍한 것들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 동시에 이 얄팍한 것들을 근거로 나 역시 누군가에게 늘 재판받는다. 

소설 속 '보통 인간'들과 다른 점은, 의식적으로 재판 결과를 타인에게 비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닥 간섭하지도 않는다. 그 이유는 거창하지도 성숙하지도 않다. 누군가를 재판하는 게 얼마나 같잖은 지 체험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가 나에 대한 재판 결과를 나에게 내비치는 게 싫기 때문이며, 그저 타인의 인생을 '관조'하길 즐기기 때문이다. 관조자나 관찰자가 아무래도 맘 편하고 죄책감을 느낄 일이 적다. (조금은 비겁한 스탠스) 

이 질문과 답변에 생각의 편린은 일단 한쪽에 치워두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자. 

책에는 '보통 사람'에 속하지 못한 두 사람이 나온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게이코와 (쓰레기 같은) 시라하 씨. 

둘 모두 보통 세계에 속하지 못한, (보통 세계 기준) 이물질들이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은 상이하다. 

먼저 시라하 씨는 보통 세상의 룰을 철저하게 내재화한 사람이다. 한마디로 보통 세상의 인사이더다. 시라하 씨가 이물질이 된 이유는 간단하다. 보통 세상이 요구하는 조건들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보통 세상이 내거는 룰에 힘껏 복무하고 편입되길 원했지만, 능력이 없어 배제됐고, 배제된 까닭에 증오심을 키운 케이스다.  

하지만 게이코는 다르다. 게이코는 철저히 아웃사이더다. 게이코의 사고 시스템이나 감정선은 정규분포 중간에 위치한 집단과 판이하다. 

또 다른 점은 남성인 시라하 씨는 사회의 낙오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젠더 권력'을 휘둘러 가해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가해의 대상은 게이코를 포함한 여성들이다. 하지만, 게이코의 사고는 철저히 보통 사람의 것 밖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자신을 향해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시라하 씨의 폭력에서 해를 입지 않는다. 

게이코는 보통 사람의 눈에 이상한 부분들을 소거해가며 성실하게 편의점에서 일한다. 게이코는 결국 '편의점 인간'이 돼 버린다. 편의점 인간인 게이코에게 시라하 씨는 "기분 나빠. 너는 .... 인간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낙오자에 젠더 권력이나 휘두르는 시라하 씨나, 완벽한 부품인 '편의점 인간'이 돼 버린 게이코나, 보통의 범주에서 이물질들을 재판하고 함부로 간섭하는 보통 인간들이나.... 이 소설에는 좀처럼 긍정적인 인간 군상이 등장하지 않는다. (리얼리즘인가?)

저자는 아마, 
1) 철저한 부품, '편의점 인간'이 돼 버린 인간들에 대한 비판. 
2) 보통의 세계에 속하지 못한 이들을 너무 쉽게 배제하고 왕따시키는 '보통 사람들'에 대한 염증/비판
3) 보통의 세상에 속하지 못하고 편의점 인간이 돼 버린 사람들에 대한 공감의 감정

같은 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책 모임에선 이런 얘기들이 나왔다. 

#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편의점 인간'이 최고의 인재다. 



개인이 기계 속 부품처럼 일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편의점 인간이 최고의 인재로 인정받는다, 대다수 우리는 부분적으로 편의점 인간화 돼 가고 있다라는 얘기가 나왔다. 

'노동'이라는 층위를 따로 생각할 때, 일견 동의한다. 이때 감정을 배제하고 부품처럼 일하는 게이코는 유능한 인간이다. 반면, 시라하 씨는 무능한 인간을 대변한다. 

하지만 나는 '편의점 인간'이 21세기 최고의 인재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시대가 인정하는 전형적인 인재상은 '자기 착취'를 하는 사람들이다. 한병철이 <피로사회>에서 짚은 그런 인간들. 자기긍정과 자기착취를 내재화한 자기개발형 인간과 게이코는 확실히 다르다. 

각설하고.
많은 사람들이 '편의점'을 내세운 이 소설이 자본주의 현대 사회의 비인간적 면모를 비판하는 소설이라고 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크게 생각하지 않은 부분이다. 보통사람/이물질 구분이야 인류 역사의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늘 있었던 클리셰가 아닌가. 과거와 지금이 달라진 게 있다면, 과거에는 배제 방식이 매우 과격했고 지금은 세련돼졌다는 점 정도다. (상냥한 폭력, 세련된 폭력)

# 앞으로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할까. 보통사람(다수파)가 많아질까? 혹은 낙오되는 이물질(시라하 씨)이나 그저 부품이 돼 버린 편의점 인간(게이코)들이 많아질까? 

보통 사람의 영역이 점점 줄어들 조짐이 높아져, 보통 사람의 영역을 일정부분 유지하기 위한 사회적 규범이 더욱 견고해질 것이란 얘기가 나왔다. 

확실히 시라하 씨 같은 유형의 낙오자가 많아지리라고 생각한다. 또 이들이 사회에서 말썽을 일으키지 않도록 감시하고 처벌하는 사회의 규범도 더욱 촘촘해질 것 같다. 

이런 사회가 성숙한 사회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법/제도가 촘촘한 사회는 그닥 성숙지 못한 사회다. 

게이코 같은 유형은 어떨까?  

(일단 자고 나중에 생각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