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은 디지털 파놉티콘이 될 것인가
-<두 얼굴의 구글>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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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은 돈·기술·배짱 삼박자를 완벽하게 가진 기업이다. 구글은 이를 바탕으로 사람들이 상상만 했던, 혹은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을 세계적 규모로 저질러 버린다. 그리고 확신에 찬 얼굴로 말한다. “우리는 악해지지 말자라는 모토를 전제로 사업을 한다.”


스코트 클리랜드와 아이라 브로드스키가 쓴 <두 얼굴의 구글>은 이 매력적인 글로벌 기업, 구글의 이면을 분석한 책이다. 두 저자는 구글은 윤리적이지 않고 신뢰할 수 없으며, 세계의 모든 정보를 손에 쥐고 사람들을 디지털화된 노예로 만든다고 경고한다.


구글은 프라이버시의 재앙이다



나는 구글 캘린더로 일정을 확인하고 G메일에 새로 들어온 이메일을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궁금한 게 있으면 구글 검색창이나 유튜브에서 찾고 구글애널리틱스로 블로그를 관리한다. 이 모든 서비스는 무료다.


스코트와 아이라에 따르면 구글 서비스들은 프라이버시의 재앙이다. 우리는 이용료 측면에서는 공짜이지만, 사실 프라이버시라는 권리를 구글에 내어주며 대가를 치르고 있다. 구글은 “손댈 수 있는 모든 데이터를 수집함으로써” 이용자의 사생활을 파악한다. 이 사생활 데이터는 마케팅 가치를 지니고 구글은 이를 통해 광고 수익을 얻는다.  


구글은 정보수집을 원활히 하기 위해 사람들이 훨씬 투명하고 개방적이길 원하지만, 정작 자신은 불투명하고 극단적으로 비밀스럽다


게다가 프라이버시 권리에 대한 구글의 태도는 이중적이다. 검색 알고리즘과 필터, 애드워즈 경매 과정, 인프라스트럭처에 관한 세부사항 등 구글 내부의 거의 모든 사항을 기밀에 부친다. 스코트와 아이라는 “나에겐 프라이버시가 필요하고 너희들에겐 철저한 투명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구글의 두 얼굴을 비판한다.


구글이 꿈꾸는 세상은 위험하다



이 회사의 목적은 뭔가를 수익화하는 것이 아닙니다……목적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며, 수익화는 그 수단일 뿐입니다.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이 밝힌 구글의 궁극적인 야망이다. 이용자의 프라이버시를 팔아 돈을 버는 것은 수단일 뿐이다. 구글은 전 세계 정보를 집대성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려고 한다. 스코트와 아이라는 구글이 꿈꾸는 세상이 매우 위험하다고 말한다. 이들이 우려한 구글주의 세상은 철학자 한병철이 ‘디지털 파놉티콘’이라고 표현한 세상과 닮아 있다. 한병철은 그의 저서 <투명사회>에서 “오늘날 세계 전체가 하나의 파놉티콘으로 발전한다”라면서 “자유의 공간을 자처하는 구글과 소셜네트워크는 파놉티콘 적 형태를 취해간다”라고 진단했다.


디지털 파놉티콘에서의 감시는 ‘자유에 대한 공격’이라는 형식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정보를 노출하고 과시한다. 그럼으로써 디지털 파놉티콘의 건설에 자발적으로 동참한다. 스코트와 아이라는 이런 상태를 ‘퍼블리커시(publicacy)’라고 불렀다. 퍼블리커시 상태에서 자유는 곧 통제가 된다. 통제권을 쥔 주체는 구글이다.


“세계 전체가 하나의 파놉티콘”이 된 세상이 위험한 또 다른 이유는 그 위험성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는 데 있다. 한병철이 짚은 대로 디지털 파놉티콘은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벽”이 없다. 이는 곧 시스템의 내부에 문제를 제기할 어떤 외부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구글이 만든 규칙이 비판 없이 사회에 통용될 것이다.


<두 얼굴의 구글>은 마지막 장에서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두 저자의 진단과 해결책에 동조하거나 하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그러나 구글의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 나아가 권력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된 오늘날 구글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볼 필요는 충분하다. <두 얼굴의 구글>은 구글이 주는 편리함의 마취에서 깨어나 그 이면을 살피라고 주문하는 것만으로도 읽어볼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