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안중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독립운동가 안중근,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위인이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이 많은 것 같지도 않다. 



얼마 전 인기 걸그룹 멤버 설현이 안중근 사진을 보고 긴또깡이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킨 일이 있었다. 부평경찰서는 안중근의 손도장 이미지를 '테러' 예방 포스터에 넣기도 했다. 끝판왕은 앞서 발생했다. 작년 광복절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안중근이 순국한 장소를 틀리게 말하는 실수를 저지른 것. 박 대통령은 안중근이 1910년 3월26일 교수형으로 순국한 곳은 뤼순 감옥인데 그가 이토 히로부미를 쏜 하얼빈에서 순국했다고 잘못 말했다. 


고백건대 나도 안중근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가 이토 히로부미를 쏘아 죽인 민족의 영웅이란 것과 교과서에서 본 약지 한 마디를 절단한 그의 손도장 이미지 정도가 내가 그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문득 이에 대한 부끄러움이 들어 안중근에 대한 책을 찾아보았다. 그래서 읽게 된 책이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_조동성, 김성민, 이태진_이라는 책이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안중근 어머니 조마리아의 후손 조동성 안중근 의사 기념관장(책은 안중근을 흔히 '의사'라고 호칭하는 것은 독립군 장군이었던 안중근을 개인이자 테러리스트로 격하시키기 위해 일본이 유인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안중근 의사가 아닌 안중근 '장군'이 옳은 호칭이다) 이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해 쓴 소설 부분과 역사학자 이태진이 안중근에 대해 쓴 논문. 여기에 저자 일동이 책의 목적 세 가지를 밝힌 '후기'가 첨가돼 있다. 



공저자들은 책의 eBook 파일을 특별 무료공개했다. 그러니 꼭 읽어보길 권한다!



(스포주의)



책을 읽을 때 제목부터 읽는 게 인지상정이므로 자연스럽게 제목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다. 이토 히로부미를 쏘아 죽인 것은 안중근인데 제목을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로 한 이유가 무엇일까.



소설은 내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안중근의 둘째 아들, '안준생'에 대한 이야기였다. 


호부견자(虎父犬子)이라더군요. 호랑이 아비에 개 같은 자식. 하하…….

소설 속에서 안준생은 씁쓸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그는 왜 '개'라는 모진 비난을 받았을까. 안준생은 1909년 10월 아버지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이토를 저격한 지 30년 후인 1939년 10월16일, 박문각에서 열린 이토 히로부미의 위령제에서 그의 아들 이토 히로쿠니에게 사죄한다. 또 일제의 미나미 지로 총독의 양아들이 되었다. 



민족의 반역자, 일제에 고개를 조아린 개, 변절자, 아버지를 부정한 아들이 되는 순간이자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30살 가까이 제대로 된 생활을 하지 못한 그의 인생이 굴욕적이나마 안정을 누릴 수 있게 된 변곡점이었다. 안준생은 이후 일본 곳곳을 돌며 이토 히로쿠니와의 '눈물의 화해'를 재현했다. 여러모로 부끄럽고 비극적인 일이다. 



소설은 화자가 '안준생'으로 설정된 만큼, 안준생을 비난하지 않는다. 변절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일제에 굴욕적으로 머리를 조아린 안준생의 사정을 온정적 태도로 그려나가고 있다.


아버지는 나라의 영웅이었지만 가족에겐 재앙이었죠.나는 나라의 재앙이지만 내 가족에겐 영웅입니다. 


친일의 길로 들어선 그의 선택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하지만 그가 친일파가 되기 전, 우리 민족은 안중근의 유가족들을 내팽개치다시피 했다. 안중근의 첫째 아들이자 안준생의 형 안분도는 7살 때 허기에 굶주리다가 누군가 손에 쥐여 준 독이 든 과자를 먹고 죽었다. 안준생은 일제의 서슬 퍼런 감시와 민족의 무관심, 나아가 냉대 속에 서른 살 가까이 변변한 밥벌이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안준생을 덮어놓고 비난하는 것보다 이런 상황을 알고 안준생의 친일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돌아볼 일이다.





덧) 저자 3명이 밝힌 이 책이 전하려는 이야기 3가지. 

첫째, 안중근은 의사가 아니라 장군이었다는 것.  

둘째, 안중근은 한국만의 영웅이 아니라 동양 전체의 영웅이었다는 것. 


셋째, 안준생의 친일이라는 비극적 역사가 있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