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 스포 있음 😮

설 연휴 동안 3권으로 구성된  <분서자들>_마린 카르테롱_ 세트를 읽었다. 이야기의 화자이자 주인공은 14살-7살 어린 남매이다. 오빠 오귀스트 마르스는 나르시시즘에 빠진 소년이고 동생 세자린 마르스는 숫자에 천재성을 보이는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다. 남매는 아빠의 죽음을 시발점으로 세상 모든 책을 파괴하려는 분서자들과 책을 지키려는 결사단 간의 전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서게 된다. 

처음엔 '이불 밖은 위험하니까 하루종일 책을 읽을거야!'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나서 내 표정은 ///심각😑/// 그 자체가돼 있었다. 소설 속 분서자들의 계획이 내가 현실에서 잘 알고 있는 글로벌 기업의 현실 프로젝트와 너무 닮아 있었다.  그 기업은 물론, 구글(Google)이다. 


아담 머피의 프로젝트는 몇 년 사이에 옥스퍼드, 하이델베르크, 바티칸 등 대형 도서관들을 디지털화하는 데 성공해 2000만 권이 넘는 작품을 소장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저작권 보호라든가 사생활 보호 같은 문제를 야기시켰다. 어떤 이들은 우리가 자유롭게 책을 고르며 종이를 넘기는 일이 영영 사라질 거라고 염려했다. 그러자 미국 국회에서 조사를 시작했고, 독일 정부와 일본 정부는 자국 작가들이 디지털화 작업을 금지했다. 심지어 중국 정부는 굿북스 프로젝트에 대항하기 위해 자체적인 디지털화 작업을 시작했다. 프랑스에서는 내 아버지를 선두로 도서관장들이 디지털화 작업을 거부했다. 하지만 이미 수많은 책이 스캐너로 입력된 뒤에야 비로소 사전예방원칙에 따라 굿북스 프로젝트 중단이 결정되었다.                                                                                        - <분서자들> 2권 中 


소설에 등장하는 분서자 아담 머피는 구글의 공동창립자 레리 페이지이고, 굿북스 프로젝트는 구글이 2002년 시작한 '구글 북스 라이브러리' 프로젝트랑 똑같다. 

👉👉구글 북스 라이브러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벤 루이스(Ben Lewis) 감독의 '구글 북스 라이브러리 프로젝트 (Google And The World Brain)'을 참고할 것! 2013년에 나온 시사 다큐멘터리인데, 당시는 유럽과 구글 간 소송이 진행중일 때였다. 2017년 현시점에서는 어떤지 알아볼 것. 참고할 만한 책으로는 커뮤니케이션북스의 <유럽에서 저작권과 구글의 투쟁>이 있다. 

구글이 전 세계 모든 책들을 디지털화한다는 야망을 실천에 옮긴지 15년째이다. 이전에도 종이책을 디지털화하는 사업이 어럿 있었지만, 구글같이 스케일 크게 구상한 회사나 단체는 없었다. 구글은 스캔 속도와 비용을 낮췄고 세계 여러 공공도서관들과 개별적으로 비공개 계약을 맺으며 구글 북스 라이브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구글,  돈·기술· 배짱 삼박자를 모두 갖추고 사람들이 상상만했던 일들은 세계적 규모로 저질러 버리는 기업. 구글은 '악해지지 말자'라는 모토를 전제로 사업을 벌인다고 한다. 이 모토로 짐작컨대 구글이 구글 북스 라이브러리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분서자들같은 음모를 꾸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곧 구글의 모든 사업이 선(善)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구글이 지식과 정보 데이터를 축적, 사유화해 가까운 미래에 어떤 사업을 벌일 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만일 구글의 의도대로 된다면 구글은 20세기에 출판됐다가 절판된 수백만 여 권 책들의 디지털 파일들을 판매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책과 독자들, 출판업자들, 저자들, 도서관들, 그리고 구글간 관계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시바 바이디야나단은 <구글의 배신>에서 구글 책 디지털화 프로젝트에 대해 이렇게 전망했다. 순진해 보이는 이 프로젝트가 매우 논쟁적이고 위험한 야망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불길한 전망이 가까운 미래에 현실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계속 든다. 편리하고도 무서운 미래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서...) 소설 속 분서자들의 계획은 '악해지지 말자'를 모토로 움직이는 구글과 달리 대놓고 나쁜놈들 역할에 충실하다. 분서자들은 굿북스 프로젝트가 중단되자 '이집트의 재앙 XI'에 착수한다. 전세계 종이책들을 모조리 파괴해버리고 디지털 작업이 끝난 책들의 내용을 입맛에 맞게 수정해버리려는 극악무도한 계획이다. 

'이집트의 재앙 XI'에서 종이책 파괴를 위해 고안된 게 유전자변형 곤충(IGM)이다. 종이를 자연적으로 처리하는 IGM을 만들어 종이책 바코드에 심어 유통시켜 책을 말그대로 분쇄해버리겠다는 아이디어다. 

책을 갈아버리는 유전자변형 곤충은 소설적 상상력이 가미된 이야기이지만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다. 작년에 과학자들은 아예 인조 생명체, '마이코플라즈마 마이코이데스 JCVI-syn 30'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실험실에서 473개의 유전자를 가진 인조 생명체를 창조하기까지 하는데 유전자변형 곤충이야 가능하지 않을까.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분서자들>은 그저 타임 킬링용으로 읽을만한 소설이 아니다. 인류가 책과 지식, 진리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하고 유전자변형 기술이 악용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이쯤 되니 마린이 기술 회의주의자가 아닌가 생각했지만, 이야기의 열쇠 '읽을 수 없는 책'이 사실은 햅틱 인터페이스(인간의 5감각 중 촉각 채널을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기술)였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책은 사상, 시대, 작가의 불멸을 의미한다. 분명한 건 구글이 되었든 혹은 다른 기업, 단체가 됐든 하나의 단체가 책을 독점하는 미래는 아무리 좋게 봐줘도 디스토피아적이란 사실이다. 

마린이 <분서자들>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건  구글 북스가 세상의 책과 지식 서비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경계심을 늦추지 말고 지켜보라는 메시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