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27일 <간디의 물레>를 읽고 썼던 글을 옮겨 둔다. 


(원가:10,000원/ 알라딘 신촌점에서 4,500원에 구입) 

녹색평론 발행인인 김종철 선생님(이하 '김종철')이 쓴 책 《간디의 물레-에콜로지와 문화에 관한 에세이다. (2014년 12월 16일, 알라딘 신촌점, 4500에 구입). 초판은 1999년 7월 10일에 나왔고, 내가 갖고 있는 책은 2009년에 발행된 제11쇄 중 한 권이다. 

녹색평론사 홈페이지를 링크한 것은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한 번 꼭 들어가보길 권하고 싶기 때문이며, 덧붙이자면 기본소득에 관련된 유용한 자료들이 녹색평론사 홈페이지에 올라와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다. 얼마전에 <경향신문사>에서 하는 기본소득관련 강의를 간 적이 있다. 연사는 김종철 선생님이었는데 강의 내용 중에 '지역통화'에 대한 제안도 있었다. 강의를 듣고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었는데 마침 <간디의 물레>에 '지역통화-삶과 공동체를 살리는 기술'이 있다. 신난다. 

이 책의 완전한 제목은 《간디의 물레-에콜로지와 문화에 관한 에세이》이므로 '에콜로지'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고종석의 《코드 훔치기》에는 '에콜로지가 기술문명에 대해 드러내는 적의 때문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나는 이 '적의'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 에콜로지가 기술문명에 갖는 감정은 '적의'라기보다는 '진지한 우려'에 가깝다고 본다. 《간디의 물레-에콜로지와 문화에 관한 에세이에 대한 나의 인상은 '주류가 되어야 할 비주류적'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라는 것이다. 자기파괴적인 근현대의 산업문화와 경제발전이 지금은 '상식'이자 대체불가능한 '주류'겠지만 나는 오늘날의 이 상식이 언젠가는 역사책이나 박물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과거의 담론'이 되길 바란다. 가능하면 많은 삶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스스로에 대해 반성하고 옳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주위를 돌아볼 수 있게끔 해주는 책이다.  

생태주의에는 크게 두 갈래가 있다. '보존주의'와 '보전주의'가 그것. 
<간디의 물레>를 읽어보니 김종철은 '보존주의자'에 가깝다. 

사실 나는 이 '보존주의'와 '보전주의' 사이에사 나의 입장이 무엇인지 정하지 못하겠다. 보존주의가 옳다고 생각하지만 이 자본주의,성장중심의 사회에 보존주의'가 받아들여질지 나는 회의적인 것 같다. 또한 태어나는 순간부터 습간화된 이 모든 (환경에 배치되는) 물질문명의 혜택을 스스로 포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 p228. 권력엘리트들과 주류언론을 포함하여 대다수의 사람들은 지금의 생태적 위기를 단지 기술적 보완인 부분적인 정책의 변화를 필요로 하는 문제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좀더 발전된 과학, 기술, 정보망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길인 것처럼 얘기하고, 그것을 위해서도 보다 크고 빠른 경제성장의 지속이 필요하다고 일치된 목소리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p229. 문제는 부분적인 증상이 아니라 산업체제 자체가 바로 집단자살체제라는 엄연한 사실을 쉽게 수긍하려 들지 않는다. 

어쨌든 더 읽고 공부하다보면 보존주의자(preservatoinist)이든 보전주의자(conservationist)이든 나의 입장을 정할 수 있겠지. 라는 기대를 하며 일단 읽어보려고 한다.

■ 얼마전 르디플로 4번째 모임을 했는데 나는 기획안에다가 '보존주의'와 '보전주의' 주제를 넣었다. 

김종철은 "우리가 생명의 문화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러한 문화의 재건은 우리 각자의 인간적인 자기쇄신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음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나는 이 말에 매우 동의하는 바로, 작금의 환경위기와 생태학적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김종철이 말한 자기쇄신에 힘쓰고 싶다. 

김종철이 이 책의 제목을 '간디의 물레'로 정한 것은 그가 간디의 관점, 즉 "무엇보다 큰 폭력은 인간의 근원적인 영혼의 요구에 대해서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물질적 이득의 끊임없는 확대를 위해 착취와 억압의 구조를 제도화한 서양의 산업문명"이라는 데 동의하며 이 '큰 폭력'을 극복하기 위해 간디의 물레가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인간적 규모의 생산수단, 칼의 교의에 맞선 비폭력주의의 방법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p23. 결국 간디의 사상은 욕망을 억지로 참아야 하는 금욕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진정한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 지금까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을 욕망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이었다. 
  간디의 메시지는 경제성장의 논리에 대한 무비판적인 순종과 편의주의적 생활의 안이성에 깊숙이 젖어있는 우리들에게 헛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온갖 생명에 위해를 가해온 산업문명이 인간생존의 자연적·생물학적 기초 자체를 파괴하는 데까지 도달한 지금 그것이 정말 헛소리로 남는다면 우리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p26. 망가진 것은 자연생태계뿐만 아니다. 생태계가 파손된 것은 그만큼 우리 자신의 인간성과 인간관계, 그리고 공동체의식이 훼손되었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 

p28. 현대사회에서 과학기술의 윤리성의 문제는 매우 복잡한 논쟁거리이지만, 우리는 무엇보다 오늘날 고도의 과학기술체제가 과연 얼마나 생명가치를 지지하는지를 물어보아야 한다. 

p29. 현대 과학기술을 지배하고 있는 세계관이 기계론적이고 단편적인 탓에 엘리트 과학기술집단의 심리구조가 극히 무책임한 관료주의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비판은 되풀이되어왔다.  
☞ 테크노크라트/뷰로크라트의 문제. <지식인의 죽음>p35. 테크노크라트도 지식인의 범주에 포함되곤 합니다. 지식인 위기의 또 다른 징후 같은데요.  ( …) 테크노크라트에게 중요한 것은 실제적인 퍼포먼스, 즉 임무 수행입니다. (…)테크노크라트, 즉 고급기술 내지 지식 관료들이 데모스(demos,민중)를 추방하고 있습니다. 이게 민주주의의 근본 위기입니다. 


p29. 우리는 환경파괴는 우려하면서도 그것을 구조적으로 자행하는 생활습관을 조그마한 편의나 이해관계에 매달려서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 문제되고 있는 환경위기는 결국 인간 자신의 자기쇄신, 그리고 문화의 뿌리로부터의 혁신 없이는 극복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 아 오늘 까페에서 일회용 컵을 쓴게 못내 마음에 걸린다) 


p31. 문제는 본질적으로 소외에서 비롯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제가 한가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일반적으로 매스컴에서 공해, 또는 환경문제를 다루는 일반적인 시각이라고 할까요, 이것은 아직까지 상당히 기술주의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 …) 사실 이 문제는 본질적으로 과학기술수준을 높이거나 좀더 많은 자본과 기술의 투입에 의해 해결될 성질이 아니거든요

→  이 '기술주의적인 수준'이란 것이 바로 보전주의 입장

김종철은 《창작과 비평》의 1990년 겨울호의 특집좌담 <생태계의 위기와 민족민주운동의 사상>에서 현재의 환경문제 담론이 '기술주의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옳은 지적이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접근은 맑스주의의 한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대목이다. 

p46. 전통적인 변혁세력의 이념이었던 맑스주의 내지는 기존 사회주의 운동논ㄹ, 이것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한 사상·논리는 결국 생산력중심주의를 근본전제로서 받아들여왔다는 것입니다. 그 사상은 물질중심주의이며 산업화의 이데올로기로 기능해왔다는 것입니다. 물질적 성장, 물질적 확대가 바로 인류의 진보라고 하는 믿음에 충실했다, ~ 
( …) p53.  여태까지의 변혁운동의 기본적인 시선은 지금 상태보다 질적으로 다른 어떤 상황을 목표로 하기는 했지만, 결국은 더 많은 것을 끊임없이 원하는 욕망의 구조 자체에는 근본적인 반성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p54. 그동안의 자본주의 체제는 말할 필요도 없고 우리가 현실에서 보아왔던 사회주의 체제엣도 어디까지나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그리고 인간 자신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교만성, 거대주의, 권력에의 의지, 이런 것이 지배적인 세계관이었다고 봅니다. 그러한 체제의 희생자들이 농민, 노동자, 많은 소외된 사람들, 여성들, 노인, 아이들이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늘날에 있어서 최대의 프롤레타리아는 자연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 변혁운동의 논리에서 자연에 대해 자원으로서의 자연 이상의 자연관을 과연 보여줬는가? 저는 부정적입니다. 

그는 아주 중요한 점을 지적한다. 소위 '진보'적 담론이라 하더라도 결국에는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가 있으며 그 인간중심의 사고란 물질적 풍요를 계속 늘려나가는 것을 전제로 삼는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p58. 그러나 개발과 환경의 조화라는 얼핏 듣기에 나무랄 데 없는 이러한 전략에는 날로 급반해지고 있는 생태계보전의 필요성에 대한 광범위한 인식이 담겨있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이른바 산업적 생활방식에 어떤 본질적인 변경을 가할 의도는 없다는 생각이 반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p69. 오늘날 이 나라의 거의 모든 지배 권력기구를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두드러지게 공통한 것은 그들이 개발 이올로기에 깊숙이 세뇌되어 있다는 점일 것이다. 


p128. 상황이 다급할수록 필요한 것은 근본적인 성찰이다. 그러나 오늘날 매스 미디어의 본질을 생각할 때, 한국의 주류언론이 이와같은 근본적 성찰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로 보인다. 신문이나 방송 그 자체가 거대기업화되었을 뿐만 아닐 실제로 상업광고 없이는 존속할 수 없는 처지에서, 대부분의 언론이 현재의 사태를 시급히 벗어나야 할 재앙으로 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지 모른다.
☞ 이 구절을 읽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생각났다. 르몽드는 10년 전 걸 읽으나 이번달 호를 읽으나 비슷하다. '근본적인 성찰'을 하는 언론이기 떄문이다. 



【자동차 없는 세상을 꿈꾸며】
p184. 프랑스 사회이론가 앙드레 고르쓰는 개인자동차의 급속한 보급에 관련하여 흥미로운 비유를 든 바 있다. 즉, 자동차를 개인적으로 소유하려는 것은 본질적으로 전망좋은 해변에 저마다 별장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과 같다. 그런데 바닷가라고 하는 한정된 공간에 수많은 사람들의 사유별장이 들어설 때 그러한 별장은 이미 별장으로서의 아무런 기능도 할 수 업게 되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동차라는 '편리하고 쾌적한' 수송수단은 그것이 모든 사람들의 사적 수송수단이 될 때 그것의 수송수단으로서의 기능 또는 적어도 그 '편리와 쾌적함'은 소멸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지극히 간단한 원리 때문이다. 즉, 자동차가ㅏ 불어나는 것에 비례하여 지리적 공간이 한없이 넓어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 앙드레 고르쓰의 문제의식은 나의 그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나는 평생 '뚜벅이'이고싶다. 우리 사회에서 자가용은 개인의 경제적 성공의 척도가 되는 기준이다. 이는 곧 자가용이 없으면 경제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는 반증이며 이는 곧 위신떨어지는 창피한 일이된다. 사회에 만연한 이런 생각은 어리석고 오만하며 같잖다. '뚜벅이'라는 말에는 어느정도 '무시'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그렇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그 무시에 아랑곳하지 않고 뚜벅이를 고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리석은 자는 개인의 편리와 위신을 생각하느라 '환경'을 생각하지 못한다. 나는 남의 눈치나보며 가지만족감에 빠지는, 그리고 환경을 파괴시키며 편리함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뚜벅이'가 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컴퓨터기술-구원인가 저주인가】
저자가 하고 있는 말은 결코 '구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컴퓨터가 저주에 가깝다는 말조차 컴퓨터로 타이핑한 텍스트를 통해 독자에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다. 
p199에 있는 '정보'에 대한 통찰은 매우 좋다. 
'정보란 것은 뿌리없는 지식의 파편으로 그것 자체로는 사람의 주의력을 끊임없이 흩어지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할 뿐이다. 정보를 의미있는 것으로 만드는 데 필수적인 것은 인간적인 맥락이다. 

 【나락 한알 속의 우주
故 무위당 장일순 선생을 기억하는 글이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 이름이 낯익다 했는데 언젠가 용이 보여준 글에서 용의 스승님의 스승님으로 등장했던 사람이었다. 

지용의 글에서 발췌: 나의 스승님은 젊은 시절 5월광주의 전두환을 진정 죽이고 싶으셨단다. 그런데 스승님의  스승이신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께서는 “전두환을 사랑하라”고 하셨다고 한다.

호기심이 생겨 찾아봤는데 무위당 장일순 선생은 이분이다. 


무위당 장일순 (1928 ~ 1994 )

장일순 선생의 공식적 명칭은 늘 서예가였고, 때로는 막연히 사회운동가였다. '막연히'라는 수식어가 붙은것은 선생이 "세상 사람들 앞에 감히 나서지 않는다"는 노자의 덕목을 따랐기 때문이다. 
선생은 6.25 직후 원주에 '대성학원'을 설립하는 등 교육운동에 헌신했고 80년대 초부터 '한살림' 사상을 이끌며 민중속에 호혜적 경제생활조직을 확산시키기 위한 협동과 연대를 했다고 한다.북한에 대해서는 중립화 평화통일론을 제창했고 이것이 빌미가 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장일순 선생은 한국의 근현대 정신사에서 참으로 희귀한 '비폭력주의 사상'의 맥을 이었다. (해월 선생-장일순 선생으로 이어지는 비폭력주의 사상의 흐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