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난 날짜와 자살로 생을 마감한 날짜가 같은 사람. 다자이 오사무.
간혹 일본인을 만나 짧은 대화를 나눠야 하는 상황에 몰리거나, 일본 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테이블 위에 올려질때면 늘 '저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좋아해요. 정말 끝내주죠. 사람들은 가수 '요조'가 요조숙녀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인간실격>의 주인공 이름에서 따왔다는 걸 아나요?'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은 내가 늘 읊어대는 레퍼토리에 등장하는 <인간실격>밖에 읽지 않았다는 사실은 얼마간 나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사실 나는 그가 쓴 (아닌가 그의 딸이 쓴인가?) <암컷에 관하여>라는 책을 읽어보고 싶었지만, 책을 구매하는 데 실패했다. 그래서 또 한동안 내가 읽은 그의 작품이란 <인간실격> 하나에 머물러야했다.
그러다가 어제 <다자이 오사무 단편선>을 읽었다. 얼마전 산 책인데, 어제 밤 다자이 오사무가 필요한 밤이었기에, (나는 지독히 외로웠고 나만큼 외로움에 절은 사람의 글을 읽어야 했다) 이 책을 열고 이런 저런 단편을 읽었다.
다자이 오사무 특유의 문체나 감수성이 느껴져서 좋았다.
<땅땅땅>이라는 단편 소설을 읽었는데
애초부터 타인이다라는 구절이 참 좋았다. 앞뒤 문맥을 따지면 그닥 의미 있거나 주제 의식이 담긴 문장은 아니었다. 일본이 2차 세계대전 후 패망하고 전쟁터에서 낙향한 한 젊은이가 좋아하는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에 나오는 구절인데, 자신이 짝사랑했던 여자에게 어느날 흥미가 사라져 '애초부터 타인이다'라고 생각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편지를 만연체로 길게 길게 늘여 썼는데, 지금 이 글의 문장이 간결하지 못하고 늘어지는 것도 그 영향이다. (나는 이토록 방금 읽은 글의 영향을 크게 받는 사람이다)
아무튼, '애초부터 타인이다' 좋은 말이다. 애초부터 타인이다. 사람들의 관계에 대해 지나치게 슬퍼할 것 없다. 그들은 애초부터 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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