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서 책이 서식하고 있는 곳은 크게 두 곳이다. 내 방과 안방.
안방에는 아빠의 콜렉션이 한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이 책장은 나의 흥미를 끄는 동시에 불가사의한 것이기도 하다. 책장을 보면 이책 저책 꺼내보다가 이내 한 권을 뒤적이기 마련인데 아빠의 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대부분 한자, 즉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문자로 쓰여있기 때문이리라.
나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이 책장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한다.
언젠가 내가 물려받을 책들. 미래의 어느 지점, 운이 좋아 내가 한자를 익히게 되면 나는 이 책들을 읽어볼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면 아빠의 삶을, 적어도 관심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그 사람의 서재를 살피는 일이니까.
나는 이 책들을 장기적으로 내 소유라고 생각한다. 혹 내가 한자를 깨치지 않을지라도 나는 이 책들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아빠의 유산이 될 책들이다.
이런 생각도 한다. 전자책 단말기를 산 후로 나는 책을 갖고 싶으면 인터넷에 접속한다. 아빠는 인사동에 간다. 아빠가 찾는 책들은 인사동에 있다. 세대가 한 번 바뀌었을 뿐인데 책을 접하는 통로는 이만큼 다르다. 내 다음 세대가 책을 탐하는 경로는 또 얼마나 바뀔까.
또 이런 일화도 떠오른다. 아빠는 내가 '아 오늘은 지나치게 일찍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이른 아침에도 일어나 있다. 책을 보며 서예를 한다. 나는 늘 아빠가 나와 달리 아침형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언젠가 '아빠는 어쩜 그렇게 아침형 인간이야'라고 물은 적이 있다. 아빠는 '나도 아침에 더 자고 싶지만 할 일이 있어서 일찍 일어나는거야'라고 답했다. 이 말은 농담 반 진담 반 일 것이다. 어찌됐든, 아빠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책읽기를 꾸준히 하기 위해 아침형 인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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