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The Good Men Project























  • 저자: 토니 포터 (A Call To Men의 공동설립자) / 번역: 김영진
  • 출판: 한빛비즈


맨박스(MANBOX) : 가부장사회가 인류 역사에 걸쳐 만들어온 '남자다움'이란 아비투스(habitus)를 강요하는 것.  

맨박스에는 ▲남자는 울면 안 됨 (우는 건 나약한 거고 여자애들한테나 어울리는 거니까) ▲남자라면 언제나 여자와의 섹스를 갈망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고자이거나 호모야) ▲계집애 같이 굴면 안돼 (한마디로 존나 나약, 열등한거니까) ▲남자는 상황을 통제해야 하지 (따라서 남자는 권력자야) 등 수많은 행동 규범들이 담겨있다. 
출처: http://cbuethics.blogspot.kr/

'남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는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불행이다. 이 강요의 과정에서 '여성다움'은 자연스럽게 열등한 것으로 치부된다. '남성다움'은 또한 철저히 이성애주의적이다. 그 이상의 젠더 현실감이 없다. '게이'는 곧 남자답지 못함, '(남성주의 사회에서 남자가 들을 수 있는 가장 모욕적인 말인) 계집애 같음' 이라는 꼬리표를 달린 자신을 발견해야 한다.

남성 중심주의는 가정 폭력과 성폭력에 큰 영향을 미치며 온갖 폭력의 온상이다.  그런데도 남성 중심주의를 잔뜩 체화한 (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노출됐기에 체화한) 대다수의 평범한 남성들은 이 사실을 진심으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성폭행 범죄자나 가정 폭행범, 성차별적 언사를 아무렇지 않게 휘두르는 누가봐도 몰지각한 남성들을 타자화한다. 그들은 "여성을 때리거나 의도적으로 상처 주지 않는 착하고 평범한 남자"로 스스로를 정의한다. 토니 포터는 이런 차별화가 남성들이 "여성 폭력 문제가 일부 '나쁜 놈'들만의 문제가 아닌 폭넓은 남성 중심주의와 성차별이 빚어낸현상이라는 점을 간과"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맨박스>는 이런 평범한 남자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다. 저자는 첫 챕터에서부터 '당신은 착하고 평범한 남자가 아니다'라고 선언하며 시작한다. 그리고 평범하고 선한 남자들에게 ''이제 남성이 연대적 책임감을 느낄 때가 됐다. 남성이 나서서 해법의 일부가 돼야 한다"고 주문한다. (벌써부터 이 책을 실제로 읽는 남성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해졌다) 

🔺 번역의 문제

<맨박스>는 훌륭한 책이다. 하지만 번역자 김영진의 번역은 이제는 '남성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자는 책의 주제의식과 반대 방향으로 가버렸다. 역설적이게도 이는 우리의 수준이 이 정도로 낮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문제는 남녀 존하대 번역에서 드러난다. 김영진은 책의 저자이자 대화에서 남편으로 등장하는 토니가 아내 태미에게 한 말은 '하대(반말)'로 번역했다. 반면 태미가 토니에게 하는 말은 존대말로 번역했다.

아내 태미가 저자 포터에게 하는 말이 존대로 번역된 부분은 '챕터2. 여자의 일생은 남자의 그것보다 가치가 낮을까?' 에 나온다.

이윽고 태미가 입을 열었다. "그러지 말고 켄덜을 데리고 그 애 집에 가서 둘이 서로 화해하라고 말하는 게 어때요?" 

포터가 태미에게 하는 말이 하대로 번역된 것은 '챕터3. 여자는 남자의 소유물이 아니다'에서 나온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무슨 진지한 얘기? 쟤는 아직 여섯 살이라고."



이 대화는 저자와 그의 아내의 대화이다. 이들 부부의 대화까지 남성 중심주의적으로 번역한다면, 번역자는 토니 포터가 밖에서는 맨박스에서 뛰쳐나오기 강연을 하고 다니고 안에서는 남성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가련한 남자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이것을 발견한 순간 나는 정말 그 끝을 알 수 없이 뿌리깊은 남성 중심주의 분위기에 넌덜머리가 났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출판사에 을 남겼다. 어떤 답변이 돌아오길 바란다. 돌아오지 않으면 출판사에 전화라도 해야겠다. 

-좋았던 구절-
대중문화가 끊임없이 던지는 여성에 대한 편향적인 메시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편견, 남성들에게 주입된 여성에 대한 생각은 실제 여성들의 잠재력을 대변하지 않는다.  
여성 폭력은 명백한 인권침해다. 만약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공격한다면 그 행위는 당연히 인권침해로 다뤄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성 폭력 문제에 관해서만은 남성들에게 책임을 면제해준다. 이때부터 여성 폭력은 사회적 문제도 아니고 남성들의 문제도 아닌 '여성 문제'가 되고 만다. (중략) 심지어 우리는 억압에 저항하는 여성들에게 특권 단체라든가 소수 단체, 페미니스트 조직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단체들은 과소평가 되기 일쑤다.
가장 중요하게는 여성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들의 목소리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우리가 여성들에게 귀 기울이지 않으면 힘의 불균형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여성들은 남성들이 필요로 하는 지식과 경험, 직관을 갖고 있다. 남성들은 그들의 리드를 따라야 한다. 여성들이야말로 남성들이 그들에게 행해온 폭력 행위의 전문가이다.  
여성들은 보호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남성이 폭력을 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