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정치 성의 권리>_ 권김현영 김주희 류진희 루인 한채윤

2015년 1월 19일 알라딘 신촌점에서 5,900원에 산 책이다. (정가: 13,000원) 
무엇보다 표지가 강렬하다. 실제로 보면 담배를 물고 있는 여자의 얼굴을 가로지르는 저 보라색 직선들이 희미하게 반짝거리고 있다. 젠더 담론에 대해 세련되게 이야기하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나는 표지. 

우선 차례는 이러하다. 

■  성적 차이는 대표될 수 있는가? _ 권김현영
■  괴물을 발명하라: 프릭, 퀴어, 트랜스젠더, 화학적 거세 그리고 의료규범 _ 루인
■  성매매 피해 여성은, 성노동자는 누구인가? _김주희 
■  엮어서 다시 생각하기: 동성애, 성매매, 에이즈 _ 한채윤
■  동성서사를 욕망하는 여자들: 문자와 이야기 그리고 퀴어의 교차점에서 _ 류진희

차례를 읽고 책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기에. 

* 그제(2015.2.4)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다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옆에 있던 사람이 말했다. '누나 결혼 안하려는 사람이에요?'   유머로 대충 넘기긴 했지만 그 사람에게 화가났다. 




얼마전 프릭쇼에 대한 자료를 봤던지라 '프릭'이야기가 담긴 ■  괴물을 발명하라_ by루인 부터 읽었다.

이 파트를 쓴 '루인'은 (의료적 조치를 하지 않는) mtf 트랜스젠더인 동시에 레즈비언이다. 필자의 이런 배경으로 미루어보아 그가 이분법적 성 규범이 지배하는 이 사회에서 얼마나 깊은 고민에 빠졌을지 알만하다. 우리 사회의 성 담론이란 매우 고루하고 빈약하기 짝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 규범적 담론에서 벗어나는 성 정체성은 모두 병리적으로 치부한다. 이런 사회에서 (의료적 조치를 하지 않는)male to female 인 것만으로 그가 겪었을 혼란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더 나아가 레즈비언이기 때문에 필자 루인이 맞닥뜨렸을 고민은 모르긴 몰라도 매우 깊었을 것 같다.  (내가 시스젠더(Cisgender)로 태어난 것은 순전히 우연이다. 마찬가지로 시스젠더가 아닌 사람들의 성 정체성 역시 우연의 산물이다.) 

책에는 루인의 그런 고민의 안감들이 착실히 담겨있다. 루인도 지적했듯이 윤리적 행동이니, 올바른 성관념이니하는 것은 모두 그 시대의 규범에 의해 정의된다. 그리고 시대의 규범에 위배되는 것은 모두 병리적 현상으로 치부된다. 예를들어 1800년대에는 '자위'행위가 자체가 호모섹슈얼리티의 실천이고 이는 곧 정신병으로 치부됐다. 즉, '남성의 생산성 없는 성적 행위에 대한 금기'는 그 시대의 강박이었으며 규범이었다. 오늘날에야 자위를 정신병으로 치부하는 일은 더는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거대하고 뿌리 깊은 규범, 즉 이분법적 젠더와 이성애가 정상이라는 규범은 건재하다. 

주디스 버틀러가 말했듯이 이 규범이 수많은 사람에게 '나 자신으로 존재하기란 왜 이렇게 문제적인가'라는 질문을 안겨주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누군가가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이 문제적인 상황은 확실히 그 자체로 문제적 상황이다. 자신의 정체성이 사회에서 부정당하는 것은 개인으로서 확실히 폭력적인 경험이기 때문이다. 

젠더는 이분법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스펙트럼의 개념으로 설명돼야 한다. 우리 모두의 성 정체성은 양극단에 남/여 시스젠더가 있는 스펙트럼의 어느 한 지점에 위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