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셋방 살던 어린 시절, 골목 끝에 오빠 친구가 살았다. 우리는 자주 같이 놀았다. 뭐 하고 놀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그저 같이 시간을 많이 보냈던 것 같다. 


하루는 오빠 친구가 머리에 피랑 하얀 지혈제 가루에 엉겨붙은 머리통을 하고 우리 집에 왔다. 놀이터에서 놀다 머리통이 깨졌다고 했다. 엄마는 그에게 응급처치를 다시 해주었고, 나와 오빠, 머리에 붕대를 감은 그까지 우리 셋은 그날도 다른 날과 똑같이 같이 놀았다. 나중에서야 알게됐다. 그날 놀이터에서 놀다 머리가 깨진 게 아니라 아빠에게 맞아서 머리가 깨졌다는 것을. 아빠가 데려온 여자에게 엄마라고 부르지 않아 머리가 깨지도록 맞았다는 것을. 이런 이야기는 동네 할머니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언젠가 그는 아버지가 새롭게 데려오는 여자들에게 절대 엄마라 부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그는 머리에 피가나도록 맞으면서도 엄마라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새 동생은 꽤 살뜰히 챙겼다. 그는 우리 집에 놀러올 때 종종 새 동생을 데려왔고, 한동안 넷이서 같이 놀았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가 새 여자와 살게됐을 때 우리는 다시 셋이 놀게됐다. 나는 동생이 갑자기 생겼다가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몇 년이 지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꽤 다정한 사람이었는데 지독하게 외롭고 불행한 사람 특유의 다정함이었다. 


시간이 지나 우리 가족은 동네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그는 계속 우리 집에 놀러왔다. 사춘기가 온 나는 뭐가 마뜩치 않았는지 '나는 그 오빠가 우리 집에 오는 거 싫다고'라며 심통을 내며 문을 박차고 나갔고, 그때 아파트 계단에 앉아있는 그와 마주쳤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계단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내게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인사를 건넸지만, 그가 내 말을 모두 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를 볼 면목이 없어 그가 돌아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집에 들어갔다.


또 시간이 흘러 나는 고등학생이 됐고 오빠는 성인이 됐다. 하루는 가족이 냉면집에 갔는데 거기에 그가 서빙을 하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던 모습과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악세서리를 주렁주렁 하고 있었다. 그는 친구와 친구의 가족을 손님으로 마주한 것에 당황한 듯 보였고 쟁반을 엎었다. 그러면서도 나에게 '많이 컸네' 따위 말을 하며 다정함을 건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날이 내가 그를 만나거나 그에 대해 들은 마지막 날이다.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가끔 그를 생각한다. 그는 여전히 다정한 사람일까. 그리워하던 엄마를 다시 만났을까. 여전히 외로움이 느껴지는 사람일까. 그가 외롭거나 불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머리가 더 커서 만났다면 같이 술 한 잔 할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되진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