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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지쳤음 

10월 초, 그러니까 비행기에 타기 전 내가 가장 많이 한 말 (혹은 가장 많이 한 생각) 

이젠 너무 지쳤어

모든 일에 이젠 너무 지쳤어, 쉬고싶어, 너무 바빠 라고 반응하고 있었다. 멍청한 변명이라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정말 너무 지쳤기 때문이다. 누군가 '네가 스케쥴이랑 컨디션 관리를 못 해서 그런 거 아니야? 컨디션 관리는 정말 중요한 능력이야. 관리 제대로 하고 멍청한 변명은 그만해'라고 지적한다면 '여기 누구 그거 모르는 사람 있어? 나도 알아, 하지만 상관 안 해. 정말 너무 지쳤거든'이라고 받아칠 준비가 언제나 돼 있었다. 

일말의 설레임도 없음. 예전엔 학교에서 수련회라도 가면 전날 밤 설레어서 마음이 울렁거려 뒤척였다. 이제는 긴 이동시간이 피로하다는 생각뿐이었고 할 일을 처리하느라 잠에 들 수 없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비행기에서 과호흡이 온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과호흡 증상은 없었다.


# 말을 할 수 없음

컨디션 최악의 상태로 영국에 도착했다. 말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기침이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코로나는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같이 간 동료 A를 안심시켜 내 마음이 편하고 싶었기에 코로나 PCR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물론 음성이었다. 


# 군더더기 없음 

A는 군더더기 없이 정확한 몸짓으로 움직이는 사람이었고 나는 온갖 군더더기를 동원해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비유하자면 이런 식: 내가 주머니에서 비져나온 소지품들을 추스르기도 전에 이미 세 발자국 정도 앞서 가 있는 A. 그처럼 효율적이지 않은 것에 죄책감이 느껴졌다. 


# 어설픔

내가 한국에서 가져간 캐리어는 세계 어느 공항에 가든 가장 후진 캐리어였다. 두 개 밖에 없는 바퀴가 조금씩 망가진 이 망할 캐리어를 끌고 한 발자국이라도 나아가려면 힘을 쏟아부어야 했다. 망할 캐리어를 끌고 낑낑대면서 내가 얼마나 어설픈 인간인지 폐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약간 비참함. 나같이 어설픈 얼간이가 지금까지 이 복잡한 세상에 붙어있는 것이 놀랍다는 생각이 반, 세상은 내가 살아가기엔 너무 복잡한데다 너무 큰 똘똘함을 요구해 피곤하다는 생각이 반. 

망할 캐리어는 히드로 공항에서 버렸다. 새 캐리어를 샀다. 처음으로 바퀴가 네 개 달린, 그래서 끌지 않고 밀어도 굴러가는 캐리어를 갖게 됐다. 


# 안도감 

네덜란드로 넘어가 친구 B를 만났다. 5년 만의 재회였다. 마음 편히 어리석을 수 있게 되자 큰 안도감이 들었다. 나는 그를 두 번 얼싸 안았다. 친구는 내게 '너 나이들어보인다'고 했고 나는 '성숙해졌다고 해줄래? 그리고 너는 살이 좀 올랐다'고 맞받아쳤다. 그는 5년 전 그랬던 것처럼 완벽한 호스트였고 나는 비로소 조금 쉴 수 있었다. 


# 진솔한, 그래서 불편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를 읽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로 시작하는 글. 까뮈의 <이방인>이 떠올라 잠깐 뫼르소에 정신이 팔렸다. 그런데 이내 다른 류의 이야기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아니 에르노가 짚어나간 그의 어머니에게서 나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마음이 조금 착잡해졌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몇 개 표시해둠

진솔한, 그래서 불편한 이야기. 그의 어머니는 당신의 딸이 자신에 대해 이같은 글을 쓰고 출판을 하고, 전 세계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여러 나라에 번역본을 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면 어떤 감정을 느낄 것인가? 나라면 유쾌하지만은 않았을 것 같았다. 나는 작가가 다소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확실히 그것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정도로 진솔한 이야기이기에 읽을 가치가 있는 것일수도. 조심성을 발휘해 글로 써 출판하지 않고 마음 속에 간직된 진솔한 이야기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 - 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나는 기분이 좋아지는 한편, 궁금했기 때문에 역시 글로 남기는 편이 좋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 랜덤 걸 둘

주말에는 친구 부모님 집에서 지냈다. 게스트로 '랜덤 걸 둘'이 더 있었다. 친구 아버지가 타시려던 비행기가 취소되자 공항에서 갈 곳을 잃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원래는 공항에 발이 묶인 11명을 다 데려오시려고 했대. 그러다가 정말 갈 곳 없는 두 사람만 데려오셨어. 아빠는 공항에서 랜덤 피플을 집에 데려오는 사람이야'

놀라움. 이토록 너그럽다니. 이토록 친절하다니. 나라면 공항에서 생전 처음 만난 사람을 집에 초대하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B의 부모님 꽤나 놀라웠고, 배울 점이 많았다. 이런 어른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다만 언어가 통하지 않아 아쉬웠다. 언어가 통했다면 나는 B의 부모님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정말 아쉬웠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친구의 아버지가 better understanding of universe를 얻기 위해 읽으신다는 책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고 기대했다. 아버지에게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그는 내게 도교에 대한 책을 꺼내주셨고, 나는 그 책을 조금 읽었다. 곧 도덕경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 티피컬 걸 

나는 '친구 B가 사는 곳'이라는 것 외에 네덜란드에 대해 별다른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았고, 네덜란드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물이 참 많다는 것이었다. 친구는 네덜란드라는 나라 이름이 '물(바다)보다 낮은 땅'이라는 뜻이라고 말해줬다. 

외국물 먹은 사람들이 종종 이야기하는 '대마 냄새'를 비로소 알게됐다. 이제 '좋아하는 누나에게 매일 나던 그 좋은 향이 나중에 알고보니 대마 냄새였다' 따위의 에피소드를 접할 때 대마냄새를 떠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B에게 네덜란드에 있을 때 브라우니를 한 번 먹어봐야겠다고 말했다. B는 '너는 티피컬 걸이 아닌데 왜 티피컬 걸처럼 굴려 하느냐'고 의아했다. '나는 티피컬한 티피컬 걸인데?'라고 답했다. 하지만 결국 브라우니를 먹지 않았다. 너무 피곤했던 것 같다. 


# 계급에 대하여 

<한 여자>는 계급에 대한 이야기였으므로 나는 계급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어머니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계급에 대한 어린시절 기억이 몇 개 떠올랐다. 하나같이 너저분한 일화들이기에, 글자로 옮기지는 않겠다. 계급에 대한 일화들은 계속 생기고 있다. 출장지 대화에서, 몸 담고 있는 여러 조직에서. 이는 내 신경을 꽤 건드렸고, 이것이 내가 계급이 낮다는 방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친숙함

월요일이 되자 도시에 있는 B의 아파트로 넘어갔다. B가 사진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됨. 언젠가 사진책을 선물해야겠다는 생각. 

도시로 넘어오자, 묘한 안정감이 들었고, 내가 완벽한 도시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로 간 적당한 거리감, 적당함 분주함, 너무 정돈돼 있지 않음. 이런 것들에서 익숙함과 안도감. 


# would-haves are everyone's opportunity 

안네 프랭크 가족이 실제 숨어살았던 곳이자, 이제는 박물관이 된 건물에 도착해서야. 적어도 몇 주 전 사전 예매를 해야한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빗속에 서서 허탈해했다. 황망하게 서 있을 때 한 브라질 사람이 자신에게 표가 2개 있고, 함께 보기로 한 친구의 비행기가 취소돼 표가 하나 남으니 함께 가자고 했다. 그의 친절과 나의 행운에 감탄하며 그를 따라나섰다. 

안네가 그의 언니와 함께 머물렀던 방 한 켠에 그의 아버지 오토(Otto)가 성장기 딸들의 키를 표시해둔 선이 있었다. 내 머릿속 안네는 늘 앳된 소녀였는데, 키는 나보다 훨씬 컸다는 것을 알게됐다.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 이토록

반 고흐 박물관은 가지 못했다. 역시 사전 예매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안네 프랭크 박물관에서와 같은 행운은 일어나지 않았다. 문득 세상은 너무 많은 준비성을 요하고, 이토록 복잡하고 준비성을 요하는 세상은 나같은 인간이 살아가기에 너무 벅차다는 생각을 몇 번이고 더 했다. 

문득 <길 위에서>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길 위에서>

<길 위에서>는 비트세대를 대표하는 작가 잭 케루악이 쓴 두 번째 소설. 케루악이 카페인과 마약으로 각성해가며 단 2-3주만에 몰아치듯 써내려간 작품. 문단 나눔이나 마침표 따위는 모두 생략했기에 가독성은 극악이었고 몇 년 동안 여러 출판사에서 거절당하다 마침내 이 글을 에디팅하겠다고 나서는 용자가 있는 출판사를 만나 세상에 나왔을 때, 세대를 대표하는 문화적 사건이 된 그 글.

나는 몇 년 전부터 <길 위에서>를 읽으려고 시도했었다. 그런데 몇 번이고 실패했다. 샐이라는 얼간이가 딘이라는 얼간이와 미 대륙을 횡단하는 이야기인데, 자신의 거침없음에 취해있는 얼간이의 이야기를 읽는 데는 정말 큰 마음의 여유가 필요했고, 나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비로소 그 여유를 조금 충전해 이번 기회에 <길 위에서>를 읽기로 한 것이다. 

얼간이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아드레날린이 조금 솟았고 약간 피로해졌다. 크게 지적받듯 미소지니가 묻은 이야기였고,  짜증도 났다. 


# 실수와 실패 

렘브란트 박물관(이자 그가 살았던 건물)에 달린 서점에서 <Failed it: How to turn mistakes into ideas and other advice for successfully screwing up>을 샀다. 너무 많은 실수와 실패를 해서 의기소침하던 차에 위안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창작(주로 photography)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금방 읽을 수 있는 책이었고 꽤 위안이 되었다. 


# 조심해, 세상엔 위험한 사람들이 많아 

주중 B는 일을 해야 했으므로, 나는 혼자 시간을 보냈다. 물론 아주 만족스러웠다.  B는 업무를 보면서 계속 나에게 아무 문제가 없이 모든 것이 잘 되어가고 있냐고 몇 번이고 물었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자신에게 텍스트 하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공항으로 떠날 때 '조심해. 세상엔 위험한 사람들도 많아'라고 말했다. 

12살도 아닌데 이런 말을 듣는게 의아했다. 나는 B가 내가 정말 어설픈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 잘 간파하고 있는데다 따뜻한 사람이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 머리 굴리기 

프랑스 니스. 애어비앤비 호스트는 남자였고 아주 친절했다. 그를 C라 하자. C는 지금은 함께이지 않은 두 번째 아내가 캄보디아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시아 여자랑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아주 친절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분이 그닥 유쾌하지는 않았다.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그가 '안전한' 사람인지 재고 있었다. 여러 상황을 가정하고, 이런 상황에서는 안전할까? 저런 상황에서는 안전할까? 라고 생각했다. 꽤나 피곤한 일이었고, 조금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니스에서 비로소 '이 도시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태가 되었기에, 나는 꽤 즐거웠다. 해변 아무데나 누워서 산만하게 이 책, 저 책을 뒤적였다.

# 각자의 인생을 감당해내느라 

몽마르뜨 언덕, 몇 명의 무리가 지나가는 관광객들 코밑에 종이를 들이밀고 있었다. 자신을 장애인이라고만 소개하고 별 다른 설명이 없었기에 나는 장애인 인권 개선을 위한 캠페인이라고 생각했고, 서명을 하려했다. 이름, 국적까지 쓰자 도네이션 액수를 적는 칸이 나왔다. 내겐 현금이 없었고 그들에겐 카드기가 없었으므로 도네이션을 할 방도가 없었고, 그닥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나에게 종이를 들이밀었던 사람은 내게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물었고, 한국이라고 답하자 자신의 여동생이 한국에 살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의 누이가 사는 나라가 하루에도 몇 번이고 바뀔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내게 현금이 없다는 것을 알게되지 거짓으로 꾸민 친절함을 얼굴에서 정말 놀라운 속도로 거두고, 돈이 나오지 않는 사람에게는 단 0.1의 에너지도 소비하지 않겠다는 결의로 나를 외면했다. 억지로 지어낸 친절한 얼굴만큼 징그러운 얼굴이었다. 

나는 불쾌해졌지만 이내 '저 사람도 자기 삶을 감당하느라 애쓰고 있을 뿐'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누그러졌다. 소위 관광명소라는 곳을 갈 때마다 같은 무리를 만날 수 있었다. 


# 조심해야 할 것 

파리에서는 한인 민박에 묵었다. 언제나 그렇듯 아무 생각없이 하루 전 급하게 예약한 숙소였다. 아무 생각이 없이 숙소에 도착했다. 밤이었고 지쳐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조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엉겁결에 일행이 구해지는 상황. 이 상황을 피해야 했다. 숙박비는 조식 포함이었고, 아침 식사 자리에서는 숙박객들이 정보를 주고받고 동행을 구하는 대화가 오고갔다. 나는 물론 일행을 구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게 뭔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이 일에 흥미를 느낄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사 같은 흥미를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나는 물론 혼자 다니는 쪽을 선호했다. 

꽤나 친절하고 호의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너무 닫힌 마음으로 있는 것은 아닌지, 좋은 사람들을 사귈 수 있는 기회를 뻥 차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들었다. 역시 그렇다는 결론이 나왔지만, 상관 없었다. 피곤했기 때문이다. 

덧) 혼자 다니면서 한 일(=파리 책구경)은, 다음 글에서 이어 쓰겠다. - 는 다짐을 남겨놓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