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가 쓴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읽다가 갑자기 삘 받아서 <고시원생활자의 수기>를 써본다. 


# 얄궂게도 


나는 일찍이 스무살 때 ‘고시원에서는 절대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막차 시간을 놓쳐 학교 근처 고시원에 사는 동기의 방에서 하룻밤 신세를 진 다음 날 한 다짐이다. 나는 갑자기 신세를 지게 된 게 미안해 ‘너는 침대에서 자라. 나는 바닥에서 자겠다’고 했는데 친구 왈. ‘바닥에는 몸 뉘일 공간이 없으니 같이 침대에서 자자’. 친구의 말을 믿지 못하고 ‘어떻게 한 사람 몸 뉘일 공간도 없겠어’라고 생각하다가 코딱지만한 방에 발을 들이는 순간 친구의 말이 절대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날 밤, 친구와 한 침대에서 꼭 붙어 하루밤을 보내고 나는 다짐했던 것이다. ‘절대 고시원에서는 살지 않겠어.’


이 다짐이 무색하게도, 나는 그로부터 10여년 후 작은 고시원 방에 누워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 시기 나는 절대 ‘고시원에 산다’라고 내 상황을 설명하지 않았다. 꼭 ‘고시원에 잠깐 머무는 거야’라고 말했다. 고시원에서 산다고 인정하는 순간 실질적으로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애써 부정하려는데 뉴스에서는 얄궂게도 ‘고시원, 쪽방촌 사는 취약계층에 더 가혹한 코로나 19’ 따위 보도에 열심을 떨었다. 때마침 고시원 매니저가 원생 중 확진자가 나왔다는 문자를 돌렸다. 나는 빌어먹게 작은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아 나는 위험에 내몰린 취약계층이구나! 그런거구나! 


# 강퍅한 마음 


고시원에서의 경험을 짧게 서술하자면 다음과 같다. 마음이 한없이 강퍅해지고 우울과 불행이 극대화되며 수명이 리터럴리 줄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던 시기. 


마음이 강퍅해진다는 것은 괜히 고깝게 느껴지는 사람이 많아질 때 느낄 수 있었다. 나의 마음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가난해졌다. 그 사례를 나열하자면 끝이 없고 궁상맞은 데다 그 불행의 맛이 너무 써서 이 얘긴 여기서 그만하겠다.


강퍅해질대로 강퍅해진 마음을 끌어안고 방에 앉아있으면 과장 조금 보태 옆방 사람의 콧바람 소리까지 다 들렸다. 총 3명이 내 옆방을 거쳐갔는데, 그들은 이러했다.


첫 번째 사람: A

A는 매일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레퍼토리는 늘 같았다.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는 이야기. 귓동냥으로 들은 그의 사정. 어떤 연유로 급하게 집에서 나오게 됐고 직장에서 매월 버는 돈이 220만 원 남짓인데, 여러 상황이 겹쳐 짐 풀 공간도 녹록지 않은 고시원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 이야기를 늘 조곤조곤 풀어놓았는데 매일 같은 내용을 말하는 걸로 봐서, 스마트폰 너머 상대가 매일 바뀌는 것 같았다. 늘 존댓말을 쓰는 걸로 봐서 친구인 것 같지도 않았다. 돈을 빌리려는 상황같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거처를 구하려는 전화 내용도 아니었다. 근데 왜 A는 늘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상황을 미주알고주알 얘기했을까? 나는 A가 외로워서 그런 거라고 마음대로 결론내렸다. A는 퍽 상냥한 목소리를 갖고 있었는데, 그는 그토록 상냥한 목소리를 갖고 왜 외로웠을까. 외로워서 상냥한 목소리를 갖게 된걸까.


두 번째 사람: B

B는 아주 조용했는데, 그러니까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문 밖에 놓인 슬리퍼가 아니었다면 B가 옆방에 입주했다는 것도 눈치 못 챘을 정도다. 그러다가 딱 하루 흐느껴 우는 소리가 벽 너머 들렸다. 아주 슬픈 울음이었다. 나는 옆방에 찾아가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하나 잠깐 고민했다. 평소의 나라면 분명 그정도 오지랖을 부렸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마음이 강퍅한 상태였고, ‘오지랖부려봤자 방해만 될거야’라며 가만히 그 흐느낌을 듣기만 했다. 그가 느끼고 있을 비참함을 같이 느끼는 게 내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같아 나는 비참함을 몸에 둘둘 말고 누워 그의 흐느낌을 들었다. 나는 왠지 죽고싶었다. 얼마 후 B는 고시원을 나갔다. 


세 번째 사람: C 

나는 C가 온 첫 날부터 그가 화가 많은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항상 문을 쾅 닫았고, ‘씨양’ 같은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너도 삶이 녹록지 않구나’라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늘 화가나 있는 사람과 벽 하나를 두고 사는 건 마음이 조마조마한 일이었다. 나는 그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귀를 쫑긋 세우고 그를 피해 동선은 짰다. 피곤한 일이었다.


어느날 C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왜 화가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중국인에게 화가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 들어보니 사실은 스마트폰 너머 상대가 없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그냥 중국인을 중국인이라면서 욕하고 싶었던 것이다. 고시원에는 중국인들이 꽤 살았는데, 그들이 듣길 바라는 것 같았다. 큰 소리로 말하면 층 전체에 들릴 게 뻔해서 나는 어느 방에 있을 지 모를 중국인이 혹시라도 C의 목소리를 들을까 조마조마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참을 수 없이 화가났다. 그가 정말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강퍅해지면 어쩔 수 없이 쉽게 무례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를 감안해도 그가 너무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고시원 매니저에게 문자로 상황을 알렸고, C가 나를 해코지 할 것만 같아 밖으로 피신해 한 블럭 떨어진 골목길에 서서 생각했다. 나는 화가 난 사람을 정말 무서워하는구나. C도 곧 방을 떠났다. 


그 외 사람.

고시원에 살 때 늘 나에게 먼저 인사하던 사람이 있었다. 마주치면 서로 목례 정도는 해도 소리를 내어 ‘안녕하세요’, '식사 하셨어요' 따위 말을 주고받는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이 사람은 꼭 나에게 소리를 내어 인사를 건넸다. 나는 ‘이 사람 정말 외로운가보다’라고 제멋대로 생각했다. 역시 평소의 나라면 살갑게 인사를 받고 어쩌면 친구가 됐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내 가난한 마음을 추스르기 벅찼고, 그의 인사를 거의 무시하다시피 했다. 그가 외로울 것이라고 생각한 내 짐작이 틀렸기를, 혹 맞았더라도 지금은 그가 꼭 외롭지 않기를.


-2021.09.14. 추가-

사실 위에 '평소의 나라면 이러이러했을 것이다'라고 잔뜩 써놨지만, 진실과 다르다. 그냥 위 모습들이 내 민낯이다. 나의 마음이란 강퍅하고 초라하구나. 마음은 언제 커질까? 어린아이가 '나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될까?' 걱정반 두근거림반인 마음인 것처럼 나의 마음이 언제 커질지 나는 걱정스럽고 조금 기대가되기도 한다.


#이 글을 어떻게 끝낼 줄 모르겠어서 


(일단은) 미완의 글로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