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페미니즘 이야기가 나왔다.

입을 뗀 건 작은엄마였다. 지인의 딸이 페미니스트인데 이 딸이 여성혐오, 성차별적 말을 하지 못하게 해 금기어들이 생기게 됐고 집에서 편히 얘기도 못해 불편해한다는 얘기였다.

이 얘기를 듣고 속으로 '평소에 무의식적으로 빻을 말을 얼마나 많이 했으면 그랬겠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문제는 딸이 아니라 숨쉬듯 여성혐오를 하는 작은엄마의 지인이라는 것을 왜 알아차리지 못하느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냥 가만히 있었다.

이때 엄마가 작은엄마의 말을 받아 말씀하셨다. "우리 딸도 그런 책들을 많이 읽어서 쟤 방에 가 보면 그런 책들이 쌓여있다"라고. 마치 자식의 부끄러운 치부를 말하는 것 같은 뉘앙스로.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해괴망측해 입에 올리기 어렵다는 식으로 '그런 책들'이라 칭하며.

마음 속 깊은 곳이 답답해졌다.

엄마 말대로 나는 페미니즘 및 LGBTQ 책을 꽤 많이 가지고 있다.
페미니즘 관련 책은 다른 책들과 달리 어떤 의무감(?)에서 꼭 구매해 소장하곤 한다.

작은 연대의 의미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고통받는 우리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분담하기 위해. 짊어지는 면적을 조금이라도 넓혀 고통의 크기를 분산하기 위해. 연대와 지지의 의미를 담아.

'해일이 밀려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다'고 여성이 겪는 모든 부당함을 사소화하는 사람들에게 '여기 내가 이 문제를 좌시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서. 말간 눈으로 맨스플레인을 쏟아내는 멍청한 사람들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모아놓고 보니 종이 책으로 가지고 있는 페미니즘 책이 대략 이 정도다. 나는 한때 페미니즘 책 읽는 것을 들킬(?)까봐 조심하곤 했다. 대학생 때 일이다. 여성혐오에 스스로를 노출시키는 건 아닐까 전전긍긍하며.

당시 내 모습이 부끄러워 대놓고, 전시하며 페미니즘 책을 읽어야겠다. 페미니즘을 터부시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너와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그래야겠다.

사실 페미니즘 책을 읽는건 때때로 심적으로 고통스럽다. 얼마 전 <참고문헌 없음>을 읽을 때나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을 읽을 때도 그러했다 .

마음이 아팠고 화가났고, 우울함에서 길게 허우적댔다.

그럼에도 여성들의 서사, 우리들의 서사를 열심히 읽고싶다.

여자 연예인이 페미니즘 책을 읽으면 악플에 시달리고, 여성이기 때문에 더욱 가혹하게 악플에 시달렸던 연예인이 자살로 삶을 마감한 시대에 사는 사람으로서 성희롱, 성적 대상화가 일상인 삶을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꼭 그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