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그러지 않아도 돼. 
L이 텍스트로 전한 이 말은 아직도 내 어딘가에 박혀 있다. 모멸감으로, 수치심으로, 그리고 정말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정언명령으로.

이후 나는 이 정언명령을 마음 어드메에 새기고 산다. 누군가에게 괜히 한 번 더 연락하고 싶을 때, 내가 너에게 관심이 있노라고 넌지시 알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때, 마음 속으로 스스로에게 말한다. '굳이 그러지 그러지 않아도 돼. 오버하지 말자. '

나도 타인에게 굳이 일정 정도 이상의 관심을 표하지 않고, 상대도 내게 이 '굳이'의 선을 넘지 않는다. 시시한 관계들. 하지만 모든 시시한 것들이 그렇듯, 이 편은 안전함을 담보한다. 미치게 뜨뜨미지근한 안전함. 하지만 굳이 이 안전함을 깰 이유도 없다.

굳이.

그래도 굳이 한 번 더 이야기를 건네고 싶은, 건넬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역시나 시시하고 초라해질 것 같아, 굳이라는 정언명령을 주워새기며 먹먹하게 하루를 마무리한다.

굳이를 정언명령으로 새기는 삶이란 얼마나 초라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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