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길었던 추석 연휴.
이런 저런 책 사이를 널뛰기하며 보냈다.
진득하게 다 읽은 책은 
천명관이 쓴 <고래>뿐.

<고래>에 대하여. 

아니 이건 뭐랄까. 어디에서 많이 본 서사를 버젓이 짬뽕시켜놓은 것 같으면서도 그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이야기다. 


천명관이 시도해보고 싶은 바를 다 '질러'서 쓴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바르고 발라서 단단하게 다져진, 그런 류의 소설이 아니라. 또 철저한 퇴고 따위는 이 소설에 없었을 거 같다. 저자가 책을 다 쓰고 나서 '우왕 다 썼다. 히히. 출판사에 전송!' 이랬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와(씨) 이거 뭐지. 어떻게 썼지'라는 생각이 몇 번이고 들었다. 단문도 장문도 훌륭하다. 

무엇보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좋다. 

등장인물들이 대관절 나중에 어떻게 될지 이야기 도중에 넌지시 말해버려서 김빠지는 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명관이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힘이 녹록잖게 세기 때문에 밤새 책을 붙잡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저자는 독자에게 정말 넌지시, 노골적으로 말을 건다. 까무룩 잠이 들 것 같은 타이밍에서 "독자 여러분, 밀려오는 졸음을 쫓고 조금만 더 들어보시라. 우리는 이제 드디어 기나긴 여정의 끝에 도달해 있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저자의 밀당 스킬 실화냐. 


(<고래>를 읽는 내 모습)

밤새 책을 읽으며 약 4번 깔깔 웃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박장대소해본 적이 있던가. 내 기억상으론 없다.


cf) 지난 추석 연휴에는 무슨 책을 읽었나 궁금해서 찾아보니 <분서자들>을 읽었었다.

구글의 야심과 지식의 미래 _<분서자들>을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