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 신채호


단재 신채호<조선혁명선언>을 읽었다. '의열단 선언'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선언문은 신채호가 의열단장 김원봉의 요청으로 쓴 글이다. 선언문이란 글의 갈래가 본디 기백 넘치기 마련이지만, 조선혁명선언보다 기백이 더한 글을 본 적이 없는 듯 하다.

조선혁명선언은 총 5개 부분으로 구성돼 있는데 마치 일필휘지에 써내려간 듯한 인상이다. 담고 있는 주장에는 거침이 없다. 독립을 위해 분연히 폭력도 마다하지 않았던 젊은 대한의 딸, 아들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읽으면서 줄곧 '명문이다 ㄷㄷㄷㄷ!!!!'를 마음속으로 외치며 읽었다)

의열단원들은 일본(조선총독부)를 타깃으로 한 암살·파괴 투쟁을 벌인 후 <조선혁명선언>을 현장에 뿌렸다고 한다. 내가 당시 사건의 현장에서 이 혁명선언을 집어든 한국인이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또 일본 경찰이었다면 어땠을까.

전자였다면 피가 끓었을테고 후자였다면 내심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모골이 송연해졌을 것 같다. 실제로 의열단이 벌인 사건의 현장마다 뿌려진 <조선혁명선언>을 읽고 의열단을 찾아 독립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조선혁명선언>을 읽는 경험은 내게 양가적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명문을 읽는 즐거움, 내용의 장쾌함에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비되다가도 의열단장 김원봉을 비롯해 의열단원들의 최후가 불행했다는 사실이 떠올라 금세 서글퍼졌다.

또 무장 폭력 노선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친절하고 세련된 폭력'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의열단의 물리적 폭력은 해외 뉴스에서나 볼법한 생경한 일이다. 폭력 노선은 쉬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의열단이 수단으로 '폭력'을 내세웠다고 해서 의열단 활동의 의의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혁명의 길은 파괴부터 개척할지니라. 그러나 파괴만 하려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건설하려고 파괴하는 것이니, 만일 건설할 줄을 모르면 파괴할 줄도 모를지며, 파괴할 줄을 모르면 건설할 줄도 모를지니라. 건설과 파괴가 다만 형식상에서 보아 구별될 뿐이요, 정신상에서는 파괴가 곧 건설이다. 
단재는 <조선혁명선언> 5장에 이렇게 밝혔다. 나라를 빼앗긴 엄혹한 시대의 현실 앞에서 그들에게 폭력은 '정의'와 동의어였고 취할 수 있는 마지막 몸짓이 아니었을까.

의열단을 다룬 영화 <암살>에서 전지현은 '이런다고 독립이 될 것 같으냐'는 하정우의 말에 이렇게 말한다.
모르지. 그치만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
<암살>을 보고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다. 잊지 말아야지. 그들이 계속 싸웠다는 것을.



조선혁명선언 5개 부문

제1장. 일제를 조선의 국호와 국권과 생존권을 박탈해간 강도로 규정하고, 이를 타도하기 위한 정당한 수단임을 천명했다. 서두에서 '강도 일본이 우리의 국토를 없이하여 우리의 정권을 빼앗으며 우리의 생존에 대한 필요조건을 다 박탈하였다'고 전개한다. 이어 '딸깍발이 등살에 우리 민족은 발 디딜 땅이 없어 산으로 물로 서간도로 북간도로 시베리아의 황야로 몰리어 아귀(배고픈 귀신)부터 유귀(떠도는 귀신)가 될 뿐이며, 강도 일본이 헌병정치, 경찰정치를 여행하야 우리 민족이 촌보의 행동도 임의로 못하고...'라고 썼다. 

제2장. 강도정치에 타협, 기생자는 우리의 적이다. 

제3장. 외교, 준비 이몽을 버리고 직접혁명을 선언하노라. 

제4장. 양병 10만이 일발의 작탄만 못하나니.

제5장. 이족통치 등 파괴하고 신조선 건설. 

뜻 있는 한국일이라면 다른 글은 몰라도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은 반드시 읽고, 일제강점기 한 애국자의 혼백을 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