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른 공대생이 판 메이커 미디어, 긱블

[인터뷰] 미디어 스타트업 '긱블'의 박찬후, 김수연 씨

공대생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은 얄팍하면서도 견고하다. 공대생 A가 여자라면 ‘공대 아름이’ 꼬리표가 끈덕지게 따라붙고, 남자라면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너드(nerd)로 분류되기 십상이다. 이 스테레오타입에 반박하며 공학의 멋짐을 보여주기 위한 무대를 만든 이들이 있다. 지난 2월 테크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긱블’을 창업한 공대생들이다. <블로터>는 긱블의 박찬후 대표와 대외협력 담당자인 김수연 씨를 만나 미디어 스타트업을 창업한 공대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박찬후 긱블 대표
긱블은 공학을 위한 런웨이
긱블은 공대생들이 만든 메이커 미디어다. 과학고를 졸업하고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해 3학년에 재학 중인 박찬후 대표가 포항공대와 카이스트 공학도들과 함께 만들었다. 박찬후 대표에게 ‘공대생이 공학을 전면 내세운 미디어를 창업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그는 “한(恨)이 좀 맺혔다”라고 운을 뗐다.
“미디어를 즐겨 보고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다. TV를 틀면 음악, 스포츠, 예능이 가득하다. 그런데 공학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공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주인공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공학을 공부한 6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한이 좀 맺혔다. ‘왜 우리는 무대가 없지? 공학은 미디어에서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없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우리도 한 번 우리만의 무대를 만들어보자. 사람들이 우리에게 박수를 보낼 수 있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찬후 대표가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라는 심정으로 만든 무대가 긱블이다. 그는 많은 공대생이 공학에도 무대가 필요하다는 자신의 말에 공감할 것이라고 말했다. 패션이 ‘런웨이’ 무대를 통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박수를 받듯 공학도 무대가 필요하다고 박찬후 대표는 말했다. 김수연 씨는 “공대생들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그런데 내가 무엇을 하는지 보여주지를 못하는 것 같다”라며 “음악하는 친구들, 예를 들어 바이올린을 하는 친구라면 바이올린 켜는 영상을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리면 많은 호응을 받는다. 그런데 공대생은 맨날 하는 게 공부인데, 그 모습을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릴 수도 없고… 우리도 나름대로 공학을 해석하고 맛있게 요리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런웨이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긱블의 대외협력 담당 김수연 씨
김수연 씨는 또 “(긱블을 통해) 공대생의 스테레오타입을 바꿔보고 싶다”라고 했다.
“공대를 2년 다니면서 외부 모임을 하면 많이 듣는 이야기가 있다. ‘너네도 아름이 있어? 너도 아름이야? 남자 많지? 너도 인기 많아?’ 같은 이야기다. 남자애들은 소개팅에 나가면 ‘네 옷장에 체크무늬 셔츠 몇 개 있어?’라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공대 아름이, 체크무늬 셔츠, 두꺼운 책과 안경 모두 공대생에 씌워진 스테레오타입이다.
내가 공대에 온 이유는 공학이 재밌으니까, 그래서 고등학교에서 배운 것에서 더 나아가 배우기 위해서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공대를 이렇게밖에 생각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공대생의 스테레오타입을 바꿔보고 싶다.”
김수연 씨는 공대생을 ‘알려지지 않은 무언가’라고 표현하며 “이들에게 무대를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긱블이 전하려는 메시지? 공학의 멋짐!
이들이 무대 위에 올라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간단하다. 박찬후 대표와 김수연 씨는 이구동성으로 “공학은 멋지다. 우리는 콘텐츠에 ‘공학의 멋짐’을 담으려 한다”라고 말했다. 긱블이 메이커 영상을 주요 콘텐츠로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긱블은 [어제 만든] 코너에서 오버워치 게임 속 라인하르트 방벽과 냉각 총,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가오나시와 개구리 페페를 현실로 소환했다. 영상 속 라인하르트 방벽은 실제로 폭죽을 막고 액화질소 냉각 총은 화분과 과자를 얼린다. 음성인식 정수기 페페는 ‘중간고사’라는 말을 들으면 굵은 눈물을 쏟는다. 구글 음성인식 API를 적용해 구현했다. 긱블 영상을 올린 페이스북 페이지 댓글 창에는 ‘멋지다’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긱블의 ‘음성인식 페페 정수기’ 영상 갈무리.
박찬후 대표는 “긱블은 ‘공학의 멋짐’이라는 메시지에 초점을 맞춘다. 콘텐츠가 조금 불친절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여태까지 공학이 재미없던 이유는 너무 친절했기 때문”이라면서 “친절하게 하나하나 다 설명하다 보니 재미도 없고 멋지지도 않았다”라고 덧붙였다. 김수연 씨도 “공학을 모르는 사람을 대상을 할 때, 더 자세하게 원리가 무엇인지 설명하면 좋을 것이라는 게 기존 공학 콘텐츠들의 접근 방법”이라면서 “우리는 ‘하우 투 메이크’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사람들이 보고 ‘쿨하다’, ‘힙하다’라고 여길만한 영상을 만들려고 노력한다”라고 말했다.
긱블은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등 기존 콘텐츠에서 착안한 아이템 이외에도 긱블만의 창작물 콘텐츠를 구상 중이다. 박찬후 대표는 “순수하게 우리 창작품을 멋있게 보여주는 트랙에도 도전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언가를 만들지 않더라도 공학과 메이킹에 대한 이야기를 토크 형식으로 풀어내는 트랙도 해보고 싶다. 오프라인에서 사람들이 우리 작품을 더 볼 수 있게 하는 것도 구상 중이다”라고 덧붙였다.
해외엔 많지만 국내에서는 드문 메이커 미디어
무언가를 만드는 ‘메이커 문화’는 국내에서 아직 낯설다. 메이커 미디어는 더더욱 생소하다. 박찬후 대표는 “외국에는 미스버스터스 등 메이커 미디어가 많다”라며 “긱블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한 게 우리가 하려는 걸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지 찾아본 일이었다. 그런데 국내에는 별로 없다”라고 말했다. 김수연 씨는 “국내 메이커 채널을 3, 4개 찾았는데 페이스북 ‘좋아요’가 500개도 안 됐다. 이 기준으로 보면 파급력이 크지 않은 채널들”이라고 설명했다.
긱블이 메이커 미디어 타이틀을 내건 이유는 무엇일까. 김수연 씨는 “전문 지식이 없이도 차근차근히 할 수 있는 게 메이킹”이라면서 “긱블은 공학적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라도 겁내지 않고 공학의 멋짐을 알게 되기를 지향한다”라고 말했다. 김수연 씨는 긱블에 합류하기 전 자신의 마지막 메이킹이 중학교 3학년 기술가정 시간에 했던 납땜이라고 했다. 그는 “그런데 긱블에 들어와서 메이킹을 접하고, 간단한 건 내 손으로 직접 만들 수 있게 됐다”라며 “인터넷에 찾아보면 기본적으로 만드는 방법이 다 나와 있고, 메이커 제품을 사면 기본적으로 설명서가 함께 온다”라고 말했다. 이에 박찬후 대표는 “나는 (메이킹이) 조금 어려울 수도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는 “메이킹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는 게 어렵다. 메이킹은 그때그때 새롭고, 이것을 아우르는 한 개의 이론이 없기 때문”이라며 “이것만 극복하면 (공학적 지식이 없는 사람이 메이킹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김수연 씨는 페이스북 메시지나 메일을 통해 ‘영상 속 메이커 작품의 제작 방법’을 묻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제작 방법을 글 형태 포스트로 올릴 계획도 있다”라고 말했다. 박찬후 대표는 “긱블이 메이커를 알려주는 페어를 열 수도 있고 사람들이 직접 만들 수 있는 키트를 개발해 판매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프라인 페어와 키트 제작·판매는 긱블이 염두에 둔 수익모델 중 하나다.
긱블 ‘아두이노로 만드는 마법지팡이’ 영상 갈무리
공학에 로망을 간직한, 혹은 공학을 잘 몰라도 관심 있는 당신이 타깃 오디언스
박찬후 대표와 김수연 씨에게 긱블의 타깃 오디언스를 묻자, 두 사람은 공대생으로서 느끼는 공대의 아이러니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공학에 로망을 가진 사람들이 입학하지만, 곧 이 로망이 깨지기 쉬운 공간이 공대라는 것이다. 이들은 사람들이 긱블 영상을 보고 공학에 대한 로망을 지속하길 원한다고 했다. 또 공학을 잘 모르더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 긱블 영상을 봐주길 바란다고 했다.
박찬후 대표는 “공대 1학년에 딱 들어온 학생들의 열정과 공학에 대한 로망은 엄청나다. 그런데 곧 공대에서 배우는 게 상상했던 것과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라며 “공학을 너무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공학을 즐겁게 사랑하는 사람 즉, 아직 대학에 입학하지 않은 고등학생이나 공대 새내기들이 우리 영상을 보고 로망을 간직하고 즐겨줬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말했다.
김수연 씨는 “공대 새내기들은 공학이 지루하다고 생각하거나 그저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라며 “로봇을 공부하고 싶어서 기계공학과에 왔고 멋진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고 싶어서 컴퓨터공학과에 온 로망이 가슴에 살아 있는 분들이 긱블을 봐줬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NOTE. 기사에 담지 못한 시시콜콜한 썰을 좀 풀어볼까 한다. 먼저, 긱블 인터뷰는 사심에서 출발한 인터뷰다 나는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길에 대해 100% 확신한다. 그리고 동시에 가보지 못한 길을 열망 혹은 선망한다. 그 열망과 선망을 수치로 하자면... 120? 정도. 내가 가보지 못한 길이라면, 대표적으로 이공계의 길. 그리고 미디어 스타트업의 길이 있다. 긱블은 이 두 길이 포개지는 곳에 놓인 미디어 스타트업이다. 그래서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긱블은 2월달 창업했다) 인터뷰를 다소 황급히 진행했다. 공대생들의 한?을 새롭게 알게됐다 인터뷰를 하며 공대생의 한에 대해 들었다. 이 내용이 좋았고, 기사에서도 야마로 뽑았다. 공대생이라면 호감 +50를 가지고 가는 나이기에, 그들에게 이런 한이 있을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다. 젊은 에너지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저 열정에서 나오는 에너지였다 인터뷰 대상자는 대학교 2학년과 3학년에 재학중인 대학생들이었다. 똑 부러지게 이야기하는 폼새에서 에너지가 느껴졌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젊은 패기가 좋구나'라고 생가했다. 그런데 기사를 쓰면서 그것이 그들의 생물학적 나이에서 오는 에너지가 아닌, 열정에서 나오는 에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 기사를 쓰고 아쉬웠던 점 미디어 스타트업을 창업한 창업가의 인터뷰였기에, 스타트업의 수익성 면이나 생존전략 등에 대해 더욱 물었어야 했다. 또 기사에 담았어야 했다. 그런데 이 점이 미흡했다.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