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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좀 아시나봐요"

역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KBS '역사저널 그날' 제23화 '인수대비, 며느리에게 사약을 내리다' 편(2014년 4월 6일 방영)에서 이 프로그램의 패널인 류근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놀라운 것은 그 대상이 전문가 자격으로 나온 한국사 강사 고아름 씨였다는 사실.

🔺이날 방송 상황🔺

방송에서 고아름 씨가 인수대비에 대해 설명하자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고갔다.

류근: (고아름 씨에게) 역사를 좀 아시나봐요
최원정 아나운서: 역사 강사시라니까요
이해영 감독: 전문가의 말이 이렇게 쏙쏙 들어오다니 
류근: 인수대비 하면 '수학용어 입니다' 이럴 줄 알았어요.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새로운 여자 강사 왔다고...

류근은 왜 역사 강사에게 '역사를 좀 아시나봐요' 따위의 얼빠진 소리를 하는 것일까. 이날 류근을 비롯한 '그날'의 남성 패널들이 고아름 씨를 '전문가'로 대하지 않고 그저 '젊은 뉴페이스 여성'으로 대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남성우월주의 문화이며 같은 맥락에서 여성혐오다.

역사저널 그날은 예능 프로그램이 아닌 다큐멘터리다. 백번 양보해 류근이 고아름 씨가 역사 강사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가정하더라도 프로그램 특성상 고아름 씨가 녹화장에 역사적 지식을 가지고 참석했다는 것을 유추해 내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도 '인수대비 하면 (고아름 씨가) '수학용어 입니다' 이럴 줄 알았다'며 고아름 씨를 깔아뭉갠다. KBS는 유머로 가장한 이 여혐 코드를 자막까지 써가면서 커버를 친다.

게다가 이해영 감독도 고아름 씨가 '젊고 아름다운 여성' 강사라는 점에 호감을 느낀다는 누앙스를 팍팍 풍기며 칭찬을 가장한 품평을 쏟아낸다. 고아름 씨의 '여성력'에 방점을 찍은 칭찬이며, 이런 칭찬을 함으로써 여성들에게 '똑똑하고 전문적이면서도 주위 분위기를 화사하게 만드는 젊은 여성'이길 요구하는 여혐코드를 시전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럴지니 신병주 교수께서 '새로운 여자 강사 왔다고 ...'라며 상황을 지적한다. 이날 방송은 총체적 난국이었다.

류근의 발언이 하도 충격적이어서 그에 대해 찾아봤더니 최근 문단에서 논란이 됐던 '여성혐오 시인'이 그라는 걸 알게됐다. (관련기사1: '여자는 밥 혹은 몸'…류근 시인 둘러싼 '여혐' 논란, 왜?')  (관련기사2: '문학, 문단 그리고 여성혐오')

우리 사회의 여성 혐오는 언제 사라질까.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전문가가 되어서도 전문가가 아닌 '여성'으로 대상화돼야 하는 것일까.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