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2일 한반도를 강타한 것

하나. 지진
둘. 또 하나의 '가만히 있으라' 메시지

다시 얼굴을 드러낸 '가만히 있으라'에 사람들은 분노했다. 지진으로 건물이 흔들리는데 '가만히 자습을 계속하라'는 고등학교 학내 방송, 그것은 2년 전 세월호 참사 당시 선실에 울려퍼진 죽음의 전주곡과 정확히 오버랩되는 것이었다. SNS에는 곧 '바뀐 거 1도 없네'라는 푸념과 비난이 쏟아졌다.

여기서 든 의문 하나. 우리는 정말 바뀌길 바라는 걸까?

'가만히 있으라 코드(이하 가코드)'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강력한 아비투스(일정하게 구조화된 개인의 성향체계. 무의식에 속하며 상속이 가능하다)다. 우리 한 명 한 명이 모자이크처럼 이 코드의 일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우리는 '가만히 있으라'의 공모자이며, 내부자,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다.

가코드는 어디에나 있다. 부모는 아이가 사회화를 시작할 때부터 성공적으로 사회에 적응하길 바란다. 그 사회가 올바른지 아닌지는 부모의 일차적 관심사가 아니다. 교육 과정은 철저하게 '가만히 있으라'를 주입시키는 과정이다.

꼭 10년 전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말하지 않았나. "한국의 학생들은 앞으로 불필요한 지식과 미래에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들을 위해 중요한 청소년기를 하루 10시간 이상을 허비하고 있다"고. 교육의 목적을 실상 '지식'이나 '직업 교육'이 아니라 그저 가만히 있으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끈질기게 가르치는 게 아닐까. 이런 교육과정의 안감을 착실히 말아감은 개개인은 가코드를 착실히 내재화한다. 그리고 자식에게 상속한다.

정말 바뀌길 원한다면 분노와 문제의식의 저변을 넓혀가야한다. 하지만 우리는 노골적인 '가만히 있으라'에만 분노할 뿐 일상의 '가만히 있으라'에는 침묵한다. 침묵은 곧 동의다. 우리는 모두 '가만히 있으라'에 공모하고 있다. 내재화해 모를 뿐.